698년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발해를 세워 고구려를 계승했다.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발해를 세워 고구려를 계승했다.
발해 건국
발해 건국(698) vs 통일신라 성립(676)
나라가 망하고 30년, 대조영은 당의 요서 땅에 끌려와 사는 고구려 유민 2세대였다. 거란의 반란으로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그는 결심한다. '돌아가자, 우리 땅으로.' 유민과 말갈족을 이끈 대탈출은 추격전의 연속이었고, 천문령 고개에서 그는 당의 정예군을 매복으로 전멸시킨다. 그리고 동모산 기슭에 성을 쌓으며 선언했다. '고구려는 죽지 않았다.'
망한 회사의 직원들이 30년 뒤 핵심 인력을 다시 모아 같은 업종으로 재창업에 성공한 것과 같다. 사명은 바뀌었지만(발해) 기술과 기업 문화(고구려 온돌·무덤 양식)는 그대로 계승했다.
'육구팔(698) 동모산' — 대조영이 육(6)로를 뚫고 구(9)사일생으로 팔(8)도강산 동모산에 도착.
대조영이 '대~충 조~용히 영~차' 하고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다. 발해는 '고구려의 발(발자취)을 해(계승)'한 나라.
나라 잃은 유민들이 30년을 견디며 품은 귀향과 재건의 열망. 천문령에서 이겼을 때 그들이 흘린 눈물은 패배자의 역사가 끝났다는 안도였다.
🏔️ 동모산 위의 새 깃발 → 🔥 온돌의 불씨(고구려 계승) → 📜 일본으로 가는 '고려 국왕' 국서.
발해 건국(698) vs 통일신라 성립(676)
나당 전쟁 종결(676)이 먼저, 발해 건국(698)이 22년 뒤. '남북국의 시작'을 묻는 문제에서 순서 주의.
고구려 부흥운동(검모잠·안승) vs 발해 건국
670년대 부흥운동은 실패했고, 발해는 별개의 성공한 건국(698)이다. 안승의 보덕국과 혼동 금지.
말갈족 국가라는 함정
피지배층에 말갈이 많았을 뿐 지배층과 계승 의식은 고구려. '말갈의 나라'로 서술한 선지는 오답 유도용.
고구려 멸망 후 그 땅과 사람과 문화를 이어받은 국가가 다시 세워지며 남북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근거가 되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