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793년
발해 2대 무왕(대무예)은 영토를 확장하며 당·신라·흑수말갈의 포위망에 강경하게 맞섰다. 동생 대문예의 망명 사건으로 당과 갈등이 폭발하자 732년 장문휴의 수군으로 산둥반도 등주를 선제공격했는데, 이는 우리 역사에서 중국 본토를 공격한 드문 사례다.
뒤를 이은 문왕(대흠무)은 실리 노선으로 전환해 당과 친선을 맺고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정비했다. 다만 명칭과 운영(정당성 중심, 좌사정·우사정 이원화)은 독자적이었다.
수도를 상경 용천부로 옮겨 장안성을 본뜬 계획도시를 건설했고, 신라도를 통해 신라와도 교류했다. 스스로를 '황상'이라 칭한 정혜공주·정효공주 묘지석은 발해의 자주 의식을 보여준다.
무왕은 인안 연호와 장문휴의 산둥 공격으로 당과 맞섰고, 문왕은 대흥 연호와 3성 6부, 상경 천도로 체제를 정비했다.
발해 무왕과 문왕
무왕 vs 문왕 업적 교차
무왕은 사방이 적이었다. 당이 흑수말갈과 손잡고 등 뒤를 노리자 그는 선수를 쳤다.
'앉아서 당하느니 먼저 때린다.' 장문휴의 함대가 바다를 건너 등주성을 불태웠을 때 당 조정은 경악했다. 아들 문왕은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갔다.
싸움 대신 배움 — 당의 제도를 가져와 3성 6부를 만들고, 벌판에 장안성을 닮은 새 수도 상경을 세웠다. 창과 붓, 부자(父子)의 상반된 무기가 발해를 완성했다.
무왕은 시장 진입기에 대기업과 소송불사로 맞서던 스타트업 창업자, 문왕은 안정기에 대기업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회사를 체계화한 2세 경영자.
'무인장' 무왕=인안+장문휴 / '문대삼상신' 문왕=대흥+3성6부+상경+신라도.
무왕은 '무력'으로, 문왕은 '문화'로 — 이름이 곧 정책. 인안은 '인(참을 인)이 안 되는' 무왕의 성격.
신생국이 강대국의 포위 속에서 살아남으려던 절박함. 등주 공격은 만용이 아니라 '우리를 건드리면 대가를 치른다'는 생존 신호였다.
🚢 등주로 향하는 장문휴의 함선 → 🏛️ 3성 6부 조직도 → 🏙️ 바둑판 같은 상경 용천부 → 🛤️ 신라로 뻗은 신라도.
무왕 vs 문왕 업적 교차
등주 공격·인안=무왕, 3성 6부·상경 천도·대흥=문왕. '연호+대표 정책' 세트로 묶어 암기.
3성 6부(발해) vs 2성 6부(고려)
발해는 3성 6부(정당성 중심), 고려는 2성 6부(중서문하성·상서성). 시대가 다르면 숫자가 다르다.
독자 연호 = 당 연호 사용이라는 함정
인안·대흥은 발해의 독자 연호로 당과 대등하다는 의식의 표현. '당의 연호를 받아 썼다'는 선지는 오답.
무왕의 강경책으로 생존을 확보하고 문왕의 정비로 국가 체제를 완성해, 발해가 동북아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