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 시대

900~901년

후삼국의 성립

★★☆☆☆알아두기추정 ·최근 20회 중 6회 · 가끔 출제

신라 말의 혼란 속에서 두 명의 야심가가 나라를 세웠다. 서남해 방비를 맡던 군인 견훤은 농민 봉기의 물결을 타고 세력을 키워 900년 완산주에 도읍하고 후백제를 선포했다.

그는 옛 백제의 원한을 갚는다는 명분으로 호남의 민심을 모았고, 뛰어난 군사력으로 한때 신라 금성을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하는 등 가장 강성했다. 몰락 왕족 출신으로 승려가 되었던 궁예는 양길의 부하에서 시작해 자립했고, 901년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웠다.

그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했으며 광평성 등 관제를 정비했지만,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며 관심법으로 신하를 숙청하는 공포 정치 끝에 부하들에게 축출된다. 그 자리에 추대된 인물이 바로 송악의 호족 왕건이었다.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왕→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719~793년발해 무왕과 문왕
  2. 828년장보고와 청해진
  3. 818~830년발해 선왕과 해동성국
  4. 9세기 말신라 말의 동요 — 호족과 6두품, 선종
  5. 900~901년후삼국의 성립

    900년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워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후삼국의 성립

  • ·900~901년
  • ·900년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워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견훤 vs 궁예 행적 교차

  • ·완산주·백제 계승·경애왕 살해=견훤 / 송악→철원·마진·태봉·미륵·광평성=궁예. 도읍지로 1차 구분.
VS

스토리텔링

견훤은 창을 베고 자던 변방의 군인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본 그는 '백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깃발로 호남을 통일했다.

궁예는 버려진 왕자였다. 유모의 손에서 자라 애꾸눈 승려가 된 그는 '내가 미륵이다'라며 강원·경기를 휩쓸었다. 한쪽은 원한을, 한쪽은 종교를 무기로 — 그러나 궁예의 관심법이 충신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을 때, 부하들의 마음은 이미 송악의 온화한 호족 왕건에게 가 있었다.

현대 비유

무너지는 대기업(신라)의 시장을 놓고 두 스타트업이 각각 '전통 브랜드 부활'(후백제)과 '카리스마 창업자의 비전'(태봉)을 내세워 경쟁한 것. 창업자 리스크로 무너진 태봉은 전문 경영인(왕건)에게 넘어간다.

암기법

'구백 견완'(900 견훤 완산주) → '구영일 궁송'(901 궁예 송악). 견=전주(완산주), 궁=개성(송악)→철원.

말장난 암기

견훤은 '견(개)처럼 훤하게' 전장을 누볐고, 궁예는 '궁(관심법으로) 예(예언)'하다 쫓겨났다.

감정 연결

버림받은 자들의 복수극이 곧 후삼국이다. 견훤의 원한도 궁예의 광기도, 신라가 만든 상처에서 자랐다는 비극성이 핵심 정서다.

장면 상상

🏹 완산주 성벽의 후백제 깃발 → 👁️ 애꾸눈 미륵 궁예의 금관 → 🏔️ 철원 벌판의 태봉 도성 → 🤝 송악에서 기다리는 왕건.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견훤 vs 궁예 행적 교차

완산주·백제 계승·경애왕 살해=견훤 / 송악→철원·마진·태봉·미륵·광평성=궁예. 도읍지로 1차 구분.

후고구려 국호 변천

후고구려(901)→마진→태봉 순. 고려(918)는 왕건의 새 국호이지 궁예의 국호가 아니다.

후백제 멸망 순서

신라 항복(935, 경순왕)이 먼저, 후백제 멸망(936, 일리천 전투)이 마지막. '신라가 최후'라는 선지는 오답.

관련 인물
견훤궁예왕건양길경애왕
관련 문화재·유물
전주 동고산성철원 태봉 도성터완산주 유적
신라 중심 질서가 완전히 해체되고 새 통일 왕조를 향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후삼국의 승자가 고려가 되면서 중세 사회로의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