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70만 년 전
뗀석기(주먹도끼)를 들고 사냥·채집하며 동굴과 막집에서 이동 생활을 한 시대, 대표 유적은 연천 전곡리와 공주 석장리.
뗀석기(주먹도끼)를 들고 사냥·채집하며 동굴과 막집에서 이동 생활을 한 시대, 대표 유적은 연천 전곡리와 공주 석장리.
구석기 시대의 생활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
주인공은 구석기 청년 '돌곰'. 겨울이 오자 사냥감이 강 하류로 떠났고, 돌곰의 무리도 짐을 챙겨 따라나선다. 어차피 떠날 집이니 나뭇가지와 가죽으로 대충 지은 막집이면 충분했다. 돌곰은 강가에서 좋은 돌을 골라 다른 돌로 내리쳐 날카로운 주먹도끼를 만든다. 이 도끼 하나로 사슴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뿌리를 캔다. 사냥에 성공한 날 밤, 무리는 모닥불에 둘러앉아 고기를 똑같이 나눈다. 족장도 노예도 없다. 가장 경험 많은 할아버지가 다음 이동지를 정할 뿐, 모두가 평등한 식구였다.
구석기인의 삶은 '캠핑카 없는 무한 백패킹'이다. 주먹도끼는 칼·도끼·삽이 하나로 합쳐진 스위스 군용칼(맥가이버칼)이고, 막집은 하룻밤 치고 접는 1인용 텐트다. 정착지도 냉장고도 없으니 식량이 떨어지면 텐트를 걷어 다음 캠핑장으로 옮기는 것이다.
구석기 = '뗀·주·막·동'(뗀석기, 주먹도끼, 막집, 동굴). 유적은 '전곡리 주먹도끼, 석장리 남한 최초' — 전주(전곡리 주먹도끼) 비빔밥처럼 세트로 암기.
구석기인은 집이 없어 '구석'에서 잤다(동굴 구석, 막집 구석). 그리고 돌을 '떼'서 쓰니 뗀석기 — 떼돈이 아니라 떼돌을 벌던 시대. 전곡리에서는 '전 세계가 놀란' 주먹도끼가 나왔다.
내일 먹을 것이 보장되지 않는 삶을 상상해 보자. 맹수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동굴에서 새우잠을 자고, 사냥에 실패하면 무리 전체가 굶는다. 그래서 사냥에 성공한 날의 모닥불은 단순한 저녁 식사가 아니라 생존의 축제였다. 그 절박함이 더 날카로운 돌, 더 좋은 도구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 한탄강 강가, 가죽을 걸친 사람들이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다. 한 손에는 물방울 모양의 주먹도끼, 뒤편에는 나뭇가지를 세워 만든 엉성한 막집. 절벽의 동굴 입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
구석기는 돌을 '떼서' 만든 뗀석기, 신석기는 돌을 '갈아서' 만든 간석기. 선지에 '갈돌과 갈판', '돌괭이'가 나오면 신석기다.
신석기 시대의 움집(정착 생활)
막집은 이동 생활용 임시 거처(구석기), 움집은 땅을 파고 지은 정착용 집(신석기). '막' 지은 집은 구석기, '움'푹 판 집은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반달 돌칼
반달 돌칼은 간석기이지만 벼 이삭을 자르는 청동기 시대 농기구다. 돌 도구라고 무조건 구석기·신석기로 찍으면 오답.
한반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역사의 출발점이며, 도구 제작과 불의 사용으로 인간이 자연에 적응해 간 과정을 보여 준다.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는 정교한 주먹도끼 문화가 없다는 모비우스 학설을 뒤집은 세계사적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