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

612년

살수 대첩

👑 영양왕★★☆☆☆알아두기추정 ·최근 20회 중 6회 · 가끔 출제

612년 을지문덕이 수 양제의 113만 대군을 살수에서 몰살시켰다. 여수장우중문시가 유명하다.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숫자로 보는 살수 대첩

일어난 해

0

수 양제 동원 병력

0

살아 돌아간 별동대

0

30만 중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538년성왕의 사비 천도와 관산성의 비극
  2. 553년진흥왕, 신라의 전성기
  3. 612년살수 대첩

    612년 을지문덕이 수 양제의 113만 대군을 살수에서 몰살시켰다. 여수장우중문시가 유명하다.

  4. 645년안시성 전투
  5. 660년백제 멸망과 부흥 운동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살수 대첩

  • ·612년
  • ·612년 을지문덕이 수 양제의 113만 대군을 살수에서 몰살시켰다. 여수장우중문시가 유명하다.

안시성 전투(645년)

  • ·살수 대첩은 수 양제의 침입을 을지문덕이 격퇴(612), 안시성 전투는 당 태종의 침입을 성주(양만춘)가 격퇴(645). '수-살수-을지문덕 / 당-안시성-양만춘' 짝으로 구분.
VS

스토리텔링

을지문덕은 힘이 아니라 머리로 싸운 장수였다. 113만 대군 앞에서 정면 승부는 자살행위임을 알았던 그는 스스로 적진에 걸어 들어가 거짓 항복하며 적의 보급 상태를 눈으로 확인했다. '이 군대는 굶고 있다.' 그때부터 그는 싸울 때마다 져 주며 적을 평양성 코앞까지 깊숙이 끌어들였다. 그리고 지칠 대로 지친 적장 우중문에게 시 한 수를 보낸다.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시게.' 칼 대신 시로 날린 조롱이었다. 회군하던 수군이 살수를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덮쳤고, 강물은 30만 대군의 무덤이 되었다.

현대 비유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는 초대형 글로벌 기업(수)의 물량 공세를, 현지 강소기업(고구려)이 상대의 보급망 약점을 파고드는 지연 전략으로 파산 직전까지 몰아넣은 격이다. 여수장우중문시는 경쟁사 대표에게 보낸 여유 넘치는 공개 저격 문서다.

암기법

'612 살수, 을지문덕, 수 양제' — 육(6)로와 물(1·2)길에서 수군을 수장시켰다. 순서 암기는 '살(612)-안(645)': 살수 다음 안시성.

말장난 암기

'살수'에서 수나라 군사를 '살수(살 수)' 없게 만들었다. 우중문은 을지문덕의 시를 받고 '우중(비 오는 중)에 문덕문덕' 울면서 돌아갔다.

감정 연결

113만 대군이 국경에 몰려왔을 때 고구려 백성이 느꼈을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절망 속에서 지혜 하나로 나라를 구한 을지문덕은 당대인들에게 신화 그 자체였다.

장면 상상

🌊 살수 강물이 붉게 물들고 부서진 수레와 깃발이 떠내려간다. 강 언덕 위 을지문덕이 붓으로 시를 써 내려가는 모습 ✍️, 그 뒤로 조용히 매복한 고구려 궁수들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안시성 전투(645년)

살수 대첩은 수 양제의 침입을 을지문덕이 격퇴(612), 안시성 전투는 당 태종의 침입을 성주(양만춘)가 격퇴(645). '수-살수-을지문덕 / 당-안시성-양만춘' 짝으로 구분.

귀주 대첩(1019년)

살수 대첩은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를 상대로, 귀주 대첩은 고려 강감찬이 거란을 상대로 거둔 승리. 3대 대첩류 문제에서 시대를 바꿔 내는 함정 주의.

천리장성 축조 시점

천리장성은 살수 대첩 이후 당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것(631년 착공, 연개소문 감독)이지 수의 침입 대비가 아니다. 대비 대상 국가를 묻는 문제 빈출.

관련 인물
을지문덕수 양제우중문영양왕
관련 문화재·유물
여수장우중문시
세계 전쟁사급 대승으로 고구려가 수의 팽창을 저지해 한반도 전체의 방파제 역할을 했고, 수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