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년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936년 후삼국을 통일, 사심관·기인 제도로 호족을 관리하고 훈요 10조를 남겼다.
호족 통합
혼인 정책 · 사심관 제도 · 기인 제도
북진 정책
서경(평양) 중시 · 고구려 계승 표방
민생 안정
흑창 설치 · 세율 1/10로 경감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936년 후삼국을 통일, 사심관·기인 제도로 호족을 관리하고 훈요 10조를 남겼다.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성종의 의창
왕건은 원래 궁예 밑에서 묵묵히 전공을 쌓던 2인자였다. 관심법을 내세워 신하들을 마구 죽이는 궁예를 보며 그는 참고 또 참다가, 918년 홍유·배현경 등 부하들의 추대를 받아 결단을 내린다. 왕이 된 그는 칼 대신 결혼반지를 들었다. 무려 29명의 부인을 맞아 전국 호족을 사돈으로 만들었고, 항복해 온 신라 경순왕에게는 벼슬을 주며 끌어안았다. 힘이 아니라 포용으로 후삼국을 통일한 그는, 죽는 순간까지 훈요 10조를 남기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다.
적대적 인수합병 대신 지분 교환과 파트너십으로 경쟁사(신라·후백제)를 흡수한 대기업 회장님. 각 지역 대리점 사장(호족)의 자녀를 본사에 연수(기인 제도) 보내게 하고, 지역 출신 임원에게 고향 관리 책임(사심관)을 맡긴 인사 전략의 달인이다.
태조 왕건 = '흑기사훈북혼'. 흑창, 기인, 사심관, 훈요 10조, 북진 정책, 혼인 정책. 흑기사가 훈장을 달고 북쪽으로 혼인하러 간다고 외우자.
왕건은 '왕이 되는 건(件)'을 918년에 해치웠다. 918 = '구일팔' → '굳이 팔(8)방 호족과 다 결혼했다'로 기억하자.
수십 년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에게 통일은 그 자체로 구원이었다. 세금을 10분의 1로 낮추고 흑창으로 곡식을 나눠 주자 백성들은 비로소 숨을 쉬었다. 힘으로 누르지 않고 끌어안는 지도자를 기다려 온 시대였다.
🏯 개경의 새 궁궐 앞, 갓 즉위한 왕건이 전국에서 온 호족들과 일일이 손을 잡는 장면. 뒤편 지도에는 서경(평양)으로 뻗은 북진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
성종의 의창
태조의 빈민 구제 기구는 흑창, 이를 확대 개편한 것이 성종의 의창이다. '흑→의' 순서로 구분하자.
최승로의 시무 28조
훈요 10조는 태조가 후대 왕에게 남긴 유훈이고, 시무 28조는 성종에게 최승로가 올린 개혁 건의문이다. 작성 주체가 왕이냐 신하냐로 구분한다.
신라의 상수리 제도
기인 제도는 신라 상수리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둘 다 지방 세력의 자제를 수도에 머물게 한 인질 제도다. 시대(신라/고려)만 바꿔 내는 오답에 주의.
조선 태조 이성계
같은 '태조'라도 왕건은 918년 고려, 이성계는 1392년 조선 건국이다. 훈요 10조·사심관이 나오면 무조건 왕건이다.
후삼국 분열을 끝내고 민족의 재통일을 이루었으며, 발해 유민까지 포용해 실질적인 민족 통합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