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와 4·13 호헌 조치, 이한열 피격에 분노한 국민이 '호헌 철폐'를 외쳐 6·29 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였다.
박종철 고문치사 (1987.1)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4·13 호헌 조치
전두환, 개헌 논의 중단 선언
이한열 최루탄 피격 (6.9)
시위가 전국으로 폭발
6·10 국민 대회
호헌 철폐 · 독재 타도
6·29 선언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와 4·13 호헌 조치, 이한열 피격에 분노한 국민이 '호헌 철폐'를 외쳐 6·29 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였다.
6월 민주 항쟁
4·19 혁명 vs 6월 민주 항쟁
1987년 1월, 하숙집에서 끌려간 스물둘 박종철은 물고문 끝에 숨졌고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로 덮으려 했다. 진실을 밝힌 것은 부검의의 양심과 교도관의 쪽지, 그리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였다. 전두환이 '개헌 논의 중단'이라는 4·13 호헌 조치로 맞서자,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진이 온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거리엔 학생 옆에 넥타이 부대가 섰고 버스 기사는 경적으로, 시민들은 손수건으로 함께 싸웠으며, 결국 6월 29일 정권은 직선제 수용을 선언하며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게임 회사가 유저들의 환불(직선제) 요구를 '약관은 절대 안 바꾼다'(4·13 호헌)고 묵살하다가, 피해 사례가 잇달아 공개되자 전 유저가 접속 보이콧에 나섰고 결국 회사가 약관 전면 개정(6·29 선언)을 발표한 상황과 같다. 소비자(시민)의 결집이 규칙 자체를 바꾼 사건이다.
'박·호·이·유·육'(박종철→4·13 호헌→이한열→6·10 항쟁→6·29 선언) 순서 암기. 결과는 '직·오·단'(직선제, 5년, 단임).
4·13 호헌은 '헌법을 호(護)위한다더니 국민 분노를 호출'했다. 6·29는 '유(6)권자에게 이(2)제 구(9)해 달라 항복한 날'.
'탁 치니 억'이라는 거짓말에 대한 분노, 최루탄에 쓰러진 청년의 사진을 본 부모 세대의 죄책감이 넥타이 부대를 거리로 불러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승리한 경험이라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 박종철 추모 영정 → 📄 '개헌 논의 중단' 담화문 → 📸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을 부축하는 사진 → 👔 시청 앞을 메운 넥타이 부대 → 🎤 직선제 수용을 발표하는 6·29 선언.
4·19 혁명 vs 6월 민주 항쟁
4·19(1960)의 결과는 정권 교체(이승만 하야·장면 내각), 6월 항쟁(1987)의 결과는 헌법 개정(직선제 5년 단임)이다. '하야로 끝나면 4·19, 개헌으로 끝나면 6월 항쟁'으로 구분하자.
6·29 선언 vs 6·15 공동 선언
6·29 선언(1987)은 노태우의 직선제 개헌 수용 선언이고, 6·15 공동 선언(2000)은 김대중-김정일의 남북 정상 회담 합의문이다. 민주화 문서와 남북 관계 문서를 혼동하지 말자.
9차 개헌 vs 8차 개헌
6월 항쟁의 결과인 9차 개헌(1987)은 직선제 5년 단임, 신군부의 8차 개헌(1980)은 선거인단 간선 7년 단임이다. '7년 간선=8차, 5년 직선=9차'로 암기.
학생·시민·직장인이 함께 참여한 범국민 항쟁으로 군부 권위주의 체제를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라는 현행 헌정 체제(87년 체제)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