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1896년 을미사변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열강의 이권 침탈이 극심해졌고, 같은 해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1896년 을미사변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열강의 이권 침탈이 극심해졌고, 같은 해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아관파천
아관파천 시기의 이권 침탈
왕비가 살해된 궁궐에서 고종은 독살 공포에 시달리며 날마다 두려움 속에 잠들었다. 1896년 2월 어느 새벽, 그는 궁녀의 가마에 몸을 숨긴 채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의 문을 두드렸다. 한 나라의 임금이 제 궁궐이 무서워 남의 나라 깃발 아래로 숨어든 것이다. 목숨은 지켰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외교관들은 미소 띤 얼굴로 광산과 철도, 산림의 이권 문서를 내밀었고, 고종은 거절할 힘이 없었다. 이 굴욕의 1년이 역설적으로 '자주 독립'을 외치는 독립 협회와 대한제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너 리스크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CEO가 경쟁 투자사(러시아) 사옥으로 집무실을 옮긴 셈이다. 경영권은 지켰지만 그 대가로 회사의 알짜 사업권(광산·철도·삼림)을 투자사들이 줄줄이 뜯어 갔고, 이를 본 직원들이 '경영 독립'을 외치며 사내 개혁 운동(독립 협회)을 시작한 상황이다.
이권 침탈은 '러-삼(삼림), 미-운(운산 금광)·경인, 일-경부'로 국가-이권을 짝지어 암기. 아관파천 해(1896)에 '독립신문 창간→독립 협회 창립' 순서까지 세트로 외우자.
'아관파천'은 '아, 관(러시아 공사관)으로 파(피)했더니 천(이권이 천 개나) 뜯겼다'로 기억하자. 러시아 공사관에 '숨은 왕' 때문에 나라 이권이 '숨' 넘어간 시기다.
임금이 남의 나라 공사관에 얹혀산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각성이 되어 독립문 주춧돌로 이어졌다. 굴욕이 자주의식을 깨운 역설의 시간이었다.
🌃 새벽안개 속 가마에 숨어 궁을 빠져나가는 고종, 🇷🇺 러시아 공사관 위에 나부끼는 타국의 깃발, ⛏️🌲🚂 열강이 나눠 갖는 광산·삼림·철도 이권 지도, 📰 거리에 뿌려지는 한글 독립신문.
아관파천 시기의 이권 침탈
열강의 이권 침탈이 '절정'에 달한 시기는 개항 직후가 아니라 아관파천(1896) 이후다. 최혜국 대우 조항이 연쇄 침탈의 법적 근거였다는 점을 함께 기억하자.
독립신문 vs 한성순보
한성순보(1883)는 박문국에서 발행한 최초의 근대 신문(순한문·관보 성격)이고, 독립신문(1896)은 서재필이 창간한 최초의 민간 신문으로 한글판·영문판을 냈다.
아관파천 vs 대한제국 수립
아관파천(1896)이 먼저이고, 경운궁 환궁(1897) 후 대한제국 선포·광무 연호가 뒤따른다. '피신→환궁→칭제'의 순서를 뒤집으면 오답이다.
국왕이 외국 공사관에 피신한 초유의 사태로 국가 위신이 추락하고 열강의 이권 침탈이 본격화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자주 독립에 대한 각성을 불러 독립 협회 운동과 대한제국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