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1895년

을미사변과 을미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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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직후 단발령·태양력 채택 등 을미개혁이 강행되자, 유생들이 을미의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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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884년갑신정변
  2. 1894년동학 농민 운동
  3. 1894년~1895년갑오개혁
  4. 1895년을미사변과 을미개혁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직후 단발령·태양력 채택 등 을미개혁이 강행되자, 유생들이 을미의병을 일으켰다.

  5. 1896년아관파천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을미사변과 을미개혁

  • ·1895년
  •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직후 단발령·태양력 채택 등 을미개혁이 강행되자, 유생들이 을미의병을 일으켰다.

을미의병 vs 을사의병 vs 정미의병

  • ·을미의병(1895)은 단발령·국모 시해가 계기로 유생 주도, 을사의병(1905)은 을사늑약 체결이 계기(최익현·평민 의병장 신돌석), 정미의병(1907)은 고종 강제 퇴위·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이 합류해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VS

스토리텔링

삼국 간섭으로 일본이 러시아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을 본 명성황후는 승부수를 던졌다. '일본을 견제할 카드는 러시아다.' 그러나 그 선택은 일본을 극단으로 몰았다. 1895년 10월 새벽,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 담을 넘어 건청궁까지 난입했고, 한 나라의 왕비가 자국 궁궐 안에서 살해되어 불태워지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만행이 벌어졌다. 두 달 뒤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까지 내려지자 유생 이소응은 '내 목은 자를 수 있어도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며 의병의 깃발을 들었다. 슬픔과 분노가 조선 팔도를 뒤덮은 해였다.

현대 비유

경쟁사(일본)가 대주주 영입 경쟁에서 밀리자 상대 회사 오너 일가(명성황후)를 해치는 초유의 범죄를 저지르고, 곧바로 전 직원에게 두발 규정(단발령)까지 강제한 셈이다. 직원들(유생·백성)이 회사 시스템 전체를 거부하며 들고일어난 것이 을미의병이다.

암기법

을미개혁은 '단·태·건·종' — 단발령, 태양력, 건양 연호, 종두법. 의병 3형제는 '을미-단발, 을사-늑약, 정미-군대 해산'으로 계기를 짝지어 암기.

말장난 암기

'을미'년은 '을(왕비를 잃고) 미(미어지는)' 해로 기억하자. 단발령은 '단칼에 발끈하게 만든 명령' — 머리카락 자르라다가 의병이 일어났다.

감정 연결

국모가 시해됐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상복을 입은 심정이었고, 거기에 부모에게 받은 머리카락마저 자르라니 이것은 근대화가 아니라 모욕으로 다가왔다. 을미의병은 이념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가 일으킨 의병이었다는 감정선을 기억하자.

장면 상상

🌙 새벽 경복궁 건청궁에 어른거리는 낭인들의 칼 그림자, 🕯️ 옥호루의 비극, ✂️ 거리에서 강제로 잘려 나가는 상투, 🏔️ 산과 고을에서 일어나는 유생 의병의 횃불.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을미의병 vs 을사의병 vs 정미의병

을미의병(1895)은 단발령·국모 시해가 계기로 유생 주도, 을사의병(1905)은 을사늑약 체결이 계기(최익현·평민 의병장 신돌석), 정미의병(1907)은 고종 강제 퇴위·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이 합류해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을미개혁 vs 갑오개혁

단발령·태양력·건양 연호·종두법은 을미개혁, 신분제 폐지·과거제 폐지·홍범 14조는 갑오개혁이다. '자른 것(단발)은 을미, 없앤 것(신분제)은 갑오'로 구분.

건양 vs 광무

건양은 을미개혁(1895) 때 제정된 연호이고, 광무는 대한제국 수립(1897) 때의 연호다. 건양이 먼저, 광무가 나중이다.

관련 인물
명성황후미우라 고로김홍집유인석이소응
관련 문화재·유물
경복궁 건청궁옥호루홍릉
일본의 침략 본질이 국모 시해라는 극단적 형태로 드러난 사건으로, 반일 감정을 폭발시켜 최초의 대규모 항일 의병 운동을 낳았고 고종의 아관파천을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