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의자왕은 즉위 초 신라의 대야성 등 40여 성을 빼앗으며 위세를 떨쳤으나, 말년에는 정치가 문란해지고 성충·흥수 같은 충신의 간언을 물리쳤다. 대야성을 잃고 딸과 사위까지 잃은 김춘추는 고구려 교섭에 실패한 뒤 당으로 건너가 나당 동맹을 성사시켰다.
660년 소정방의 13만 당군은 바다로, 김유신의 5만 신라군은 육로로 백제를 협공했다. 계백은 5천 결사대로 황산벌에서 맞서 네 차례 승리했으나 화랑 관창의 죽음으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에게 끝내 패해 전사했다.
사비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피했던 의자왕이 항복하면서 678년 역사의 백제는 멸망했고, 당은 웅진도독부를 두어 지배하려 했다. 이후 복신과 도침이 주류성에서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흑치상지가 임존성에서 호응하며 부흥 운동이 거세게 일었으나, 지도층의 내분과 663년 백강 전투에서 왜 지원군까지 궤멸당하며 좌절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침공하자 계백이 황산벌에서 결사 항전했으나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멸망했고, 곧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백제 멸망과 부흥 운동
고구려 부흥 운동
계백은 출정 전 자신의 처자식을 제 손으로 베었다. '살아서 적의 노비가 되느니 죽는 것이 낫다.' 5천으로 5만을 막아야 하는 전투, 그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황산벌에서 백제군은 죽기를 각오한 자의 힘으로 네 번을 내리 이겼다. 신라는 어린 화랑 관창을 홀로 적진에 보냈고, 계백은 사로잡은 소년을 두 번이나 살려 보냈지만 관창이 세 번째 돌진해 오자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돌려보냈다.
소년의 죽음에 분노한 신라군의 총공세 앞에 결사대는 전멸했고 계백도 쓰러졌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복신·도침·흑치상지가 3년을 더 싸웠으니, 백제는 두 번 싸우고 두 번 무너진 나라였다.
업계 2위와 해외 최대 기업(당)이 연합해 오랜 라이벌 회사를 인수 합병한 사건이다. 마지막까지 저항한 계백의 결사대는 회사를 지키려 한 핵심 인력 5천 명이었고, 부흥 운동은 해산 후에도 조직을 되살리려던 임직원들의 3년 재창업 투쟁이다.
'660 백제, 668 고구려' — 멸망은 8년 간격. 부흥 운동은 '복.도.흑.풍' — 복신·도침(주류성), 흑치상지(임존성), 부여풍(추대). 백강 전투 663에는 왜가 온다.
660년 백제는 '육(6)참골단 육(6)탄전도 공(0)염불'로 끝났다. 흑치상지는 '흑'흑 울며 '임'존성에서 싸운 장군 — '흑임자'로 암기.
계백이 가족을 벤 심정, 관창을 두 번 살려 준 적장의 마음, 그리고 낙화암 전설이 전하듯 무너지는 사비성을 바라보던 백제인들의 절망까지, 시험을 넘어 가장 비극적인 서사가 응축된 사건이다.
⚔️ 황산벌 들판에 5천 결사대가 5만 대군과 뒤엉키고, 어린 관창의 백마가 홀로 적진을 향해 달린다 🐎. 사비성 위로 연기가 오르고 낙화암 절벽에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 🌸🔥.
고구려 부흥 운동
백제 부흥은 복신·도침·흑치상지·부여풍(주류성·임존성), 고구려 부흥은 검모잠·안승·고연무(한성·오골성). 인물-나라 짝을 바꾼 오답이 최다 빈출.
관산성 전투(554년)
황산벌(660)은 백제 멸망 때 계백의 최후 항전, 관산성(554)은 성왕이 전사한 나제 동맹 결렬전. 둘 다 백제의 비극적 전투라 혼동하기 쉽다.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
백제 옛 땅에는 웅진도독부(660), 고구려 옛 땅에는 안동도호부(668)를 설치. 당의 지배 기구 이름과 지역 짝짓기 문제로 출제된다.
한반도 세력 구도가 나당 연합 대 백제·왜 구도로 재편되며 무너진 첫 도미노로, 동아시아 국제전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