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660년 나당 연합군이 침공하자 계백이 황산벌에서 결사 항전했으나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멸망했고, 곧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침공하자 계백이 황산벌에서 결사 항전했으나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멸망했고, 곧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백제 멸망과 부흥 운동
고구려 부흥 운동
계백은 출정 전 자신의 처자식을 제 손으로 베었다. '살아서 적의 노비가 되느니 죽는 것이 낫다.' 5천으로 5만을 막아야 하는 전투, 그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황산벌에서 백제군은 죽기를 각오한 자의 힘으로 네 번을 내리 이겼다. 신라는 어린 화랑 관창을 홀로 적진에 보냈고, 계백은 사로잡은 소년을 두 번이나 살려 보냈지만 관창이 세 번째 돌진해 오자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돌려보냈다. 소년의 죽음에 분노한 신라군의 총공세 앞에 결사대는 전멸했고 계백도 쓰러졌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복신·도침·흑치상지가 3년을 더 싸웠으니, 백제는 두 번 싸우고 두 번 무너진 나라였다.
업계 2위와 해외 최대 기업(당)이 연합해 오랜 라이벌 회사를 인수 합병한 사건이다. 마지막까지 저항한 계백의 결사대는 회사를 지키려 한 핵심 인력 5천 명이었고, 부흥 운동은 해산 후에도 조직을 되살리려던 임직원들의 3년 재창업 투쟁이다.
'660 백제, 668 고구려' — 멸망은 8년 간격. 부흥 운동은 '복.도.흑.풍' — 복신·도침(주류성), 흑치상지(임존성), 부여풍(추대). 백강 전투 663에는 왜가 온다.
660년 백제는 '육(6)참골단 육(6)탄전도 공(0)염불'로 끝났다. 흑치상지는 '흑'흑 울며 '임'존성에서 싸운 장군 — '흑임자'로 암기.
계백이 가족을 벤 심정, 관창을 두 번 살려 준 적장의 마음, 그리고 낙화암 전설이 전하듯 무너지는 사비성을 바라보던 백제인들의 절망까지, 시험을 넘어 가장 비극적인 서사가 응축된 사건이다.
⚔️ 황산벌 들판에 5천 결사대가 5만 대군과 뒤엉키고, 어린 관창의 백마가 홀로 적진을 향해 달린다 🐎. 사비성 위로 연기가 오르고 낙화암 절벽에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 🌸🔥.
고구려 부흥 운동
백제 부흥은 복신·도침·흑치상지·부여풍(주류성·임존성), 고구려 부흥은 검모잠·안승·고연무(한성·오골성). 인물-나라 짝을 바꾼 오답이 최다 빈출.
관산성 전투(554년)
황산벌(660)은 백제 멸망 때 계백의 최후 항전, 관산성(554)은 성왕이 전사한 나제 동맹 결렬전. 둘 다 백제의 비극적 전투라 혼동하기 쉽다.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
백제 옛 땅에는 웅진도독부(660), 고구려 옛 땅에는 안동도호부(668)를 설치. 당의 지배 기구 이름과 지역 짝짓기 문제로 출제된다.
한반도 세력 구도가 나당 연합 대 백제·왜 구도로 재편되며 무너진 첫 도미노로, 동아시아 국제전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