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6년
1636년 청의 침입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 항전 끝에 삼전도에서 항복했고, 소현세자는 볼모로 끌려갔으며 효종 대 북벌론이 일어났다.
1636년 청의 침입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 항전 끝에 삼전도에서 항복했고, 소현세자는 볼모로 끌려갔으며 효종 대 북벌론이 일어났다.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정묘호란(1627)
남한산성의 겨울, 성 안에는 식량이 떨어져 가고 성 밖에는 청의 대군이 진을 쳤다.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무릎 꿇느니 사직과 함께 죽자'며 항복 문서를 찢었고, 최명길은 '나라가 있어야 명분도 있다'며 찢긴 문서를 다시 주워 붙였다. 두 충신의 상반된 충성 사이에서 인조는 결국 성문을 나섰다. 푸른 죄수복 차림으로 삼전도 얼어붙은 땅에 이마를 찧는 왕의 모습을, 끌려가는 수십만 백성이 지켜보았다. 심양으로 간 소현세자는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보았지만, 조선은 아직 그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신흥 대기업(청)의 인수 요구를 자존심으로 거부하다 본사(남한산성)가 포위된 채 45일 만에 굴욕적 조건으로 합병 문서에 서명한 상황이다. 척화 대 주화는 '결사 항전파 대 협상파'의 이사회 격돌이다.
'정묘는 형제(1627), 병자는 군신(1636)' — 정형병군. 인물은 '척-김상헌, 주-최명길', 북벌은 '효종·송시열·이완'.
'병자년에 병자(病者)가 된 조선', 삼전도에서 '3번 절하고 9번 쿵'(삼궤구고두례). 남한산성에서 '남 몰래 한(恨)만 쌓였다'.
임금이 적장 앞에 이마를 조아릴 때 조선 전체가 함께 무너졌다. 그 치욕의 기억이 이후 100년간 북벌이라는 복수의 꿈으로 타올랐다.
눈 덮인 남한산성 성곽 위의 초췌한 병사들, 그리고 삼전도 벌판에서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왕과 우뚝 선 삼전도비. 🏔️❄️😞
정묘호란(1627)
정묘호란은 후금과 '형제' 관계, 병자호란은 청과 '군신' 관계로 종결. 국호(후금/청)와 관계 명칭을 세트로 외울 것.
북벌론 vs 북학론
북벌론은 청을 치자(효종, 17세기), 북학론은 청의 문물을 배우자(박지원·박제가, 18세기). 대상은 같은 청, 태도는 정반대.
임진왜란의 피난
임진왜란 때 선조는 의주로 피난,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 왕과 장소를 교차해 내는 함정 주의.
조선이 오랑캐로 여기던 청에 굴복한 최대의 치욕으로, 북벌론과 이후 북학론까지 조선 후기 사상 지형을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