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현종 대 기해·갑인 예송에서 서인과 남인이 상복 기간으로 대립했고, 숙종 대 경신·기사·갑술환국으로 붕당 정치가 일당 전제로 변질됐다.
현종 대 기해·갑인 예송에서 서인과 남인이 상복 기간으로 대립했고, 숙종 대 경신·기사·갑술환국으로 붕당 정치가 일당 전제로 변질됐다.
예송 논쟁과 환국 정치
사화(15~16세기)
왕이 죽었는데 대비가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로 나라가 두 쪽 났다. 겉보기엔 옷 문제지만 속내는 '효종은 정통 왕이었나, 그냥 둘째 아들이었나'라는 왕권의 급소를 건드리는 질문이었다. 서인의 거두 송시열과 남인의 허목은 학문의 자존심을 걸고 격돌했다. 한편 그 아들 대의 숙종은 강한 왕이었다. 그는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오가는 애증 속에서 집권당을 세 번이나 통째로 갈아치웠고, 신하들은 왕의 마음이 바뀔 때마다 어제의 재상이 오늘의 사약을 받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예송은 회사 정관 해석을 둘러싼 두 로펌(서인·남인)의 대리전이고, 환국은 오너(숙종)가 경영진을 통째로 3번 물갈이한 것이다. 연립정부의 협치가 승자독식 정권 교체전으로 변한 셈이다.
예송은 '기서갑남' — 기해는 서인 승, 갑인은 남인 승. 환국은 '경기갑' 순서 — 경신(1680)→기사(1689)→갑술(1694), '장희빈은 기사환국의 기사(騎士)'.
'기(해)에는 서(인)가 이겨서 기세등등, 갑(인)에는 남(인)이 이겨서 갑이 됐다'. 환국은 '숙종의 국(정권) 바꿔치기 3연벙'.
상복 한 벌에 목숨과 가문의 명운이 걸렸던 시대. 명분이 곧 권력이던 성리학 국가의 논리와, 그 논리를 이용해 왕권을 세운 숙종의 냉혹함을 함께 보라.
흰 상복을 사이에 두고 '1년'과 '3년' 팻말을 든 두 무리의 신하들, 그 위에서 저울을 쥐고 판을 뒤집는 숙종. 🕊️⚖️🔄
사화(15~16세기)
사화는 훈구의 사림 탄압, 환국은 숙종이 주도한 붕당 교체. '사화는 연산군~명종, 환국은 숙종'으로 시대를 고정하라.
기해예송 vs 갑인예송
기해(1659, 효종 사망)는 서인 승리, 갑인(1674, 효종비 사망)은 남인 승리. '기-서, 갑-남'만 확실히.
노론·소론 분화
갑술환국 전후 서인은 송시열 중심의 노론과 윤증 중심의 소론으로 분화. 서인=노론+소론 관계를 묻는 선지가 있다.
예송과 환국을 거치며 견제와 공존의 붕당 정치가 일당 전제로 변질됐고, 이것이 영·정조 탕평책의 배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