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반드시 암기

1863년~1873년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

👑 고종(흥선대원군 섭정)★★★★★반드시 암기추정 ·최근 20회 중 16회 · 거의 매회 출제

어린 고종 대신 집권한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호포제·사창제로 민생을 다잡고,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발행, 비변사 축소로 왕권을 강화했다.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흥선대원군의 두 얼굴

왕권 강화 · 민생

  • ·비변사 축소, 의정부 부활
  • ·서원 47개만 남기고 철폐
  • ·호포제 — 양반에게도 군포
  • ·사창제 실시

무리수 · 쇄국

  • ·경복궁 중건 — 당백전 남발
  • ·원납전 강제 징수
  • ·척화비 건립
  • ·통상 수교 거부
VS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863년~1873년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

    어린 고종 대신 집권한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호포제·사창제로 민생을 다잡고,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발행, 비변사 축소로 왕권을 강화했다.

  2. 1866년·1871년병인양요와 신미양요
  3. 1876년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4. 1880년~1881년개화 정책의 추진과 위정척사 운동
  5. 1882년임오군란

스토리텔링

왕족이면서도 안동 김씨의 눈을 피해 일부러 파락호 행세를 하며 시정잡배와 어울리던 이하응. 그는 굴욕을 견디며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아들이 왕이 되자 칼을 뽑았다. 자신을 무시하던 세도 가문의 소굴 비변사를 부수고, 양반의 성역이던 서원을 철폐하며 '백성을 해치는 자라면 공자가 다시 살아와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왕실의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집념으로 경복궁 중건을 밀어붙이다 당백전 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을 잃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개혁가였다.

현대 비유

몰락한 창업주 가문의 2세가 회장에 오르자마자 전임 경영진의 비선 조직(비변사)을 해체하고, 세금 안 내던 임원들(양반)에게도 4대 보험(호포제)을 물린 격이다. 다만 초호화 신사옥(경복궁)을 짓겠다고 회사채(당백전)를 남발해 재무가 휘청인 것까지 닮았다.

암기법

대원군 개혁은 '서·경·호·사·비'로 암기 — 서원 철폐, 경복궁 중건(당백전), 호포제, 사창제, 비변사 혁파.

말장난 암기

대원군이 '서!(서원) 경고한다(경복궁), 호(호포제)락호락 안 넘어간다, 사(사창제)정없이 비(비변사)를 쓸어버리겠다!' — 양반들에게 날린 최후통첩으로 기억하자.

감정 연결

군포를 못 내 도망간 이웃의 몫까지 뜯기던 농민들은 양반도 군포를 내게 한 호포제에 통쾌함을 느꼈다. 반면 유생들은 서원 철폐에 '나라의 근본이 무너진다'며 통곡했다. 같은 정책이 누군가에겐 해방, 누군가에겐 세상의 종말이었다.

장면 상상

🏯 불탄 자리에 다시 솟는 경복궁, 그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당백전 엽전 💰, 무너져 내리는 서원 현판 📜, 그리고 팔짱 낀 채 노려보는 대원군의 형형한 눈빛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균역법(영조)

균역법은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것이고, 호포제는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은' 것이다. 감면은 영조, 양반 부과는 대원군.

세도 정치기의 비변사

세도 정치기에는 비변사가 최고 권력 기구로 '비대해진' 시기이고, 대원군 때는 그것을 '축소·혁파'한 시기다. 방향이 정반대임을 기억하자.

당백전과 상평통보

상평통보는 조선 후기(숙종) 전국 유통된 법화이고, 당백전은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 마련을 위해 발행한 고액 악화로 물가 폭등을 일으켰다.

관련 인물
흥선대원군고종최익현
관련 문화재·유물
경복궁당백전대전회통육전조례
세도 정치를 끝내고 국가 기강을 다시 세운 마지막 전통적 개혁이었으나, 대외적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로 이어져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문을 닫는 선택의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