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1866년·1871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 고종(흥선대원군 섭정)★★★☆☆자주 출제추정 ·최근 20회 중 9회 · 3회 중 1회꼴 출제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가 쳐들어온 병인양요(1866, 외규장각 약탈)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쳐들어온 신미양요(1871, 어재연 항전) 후 척화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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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863년~1873년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
  2. 1866년·1871년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가 쳐들어온 병인양요(1866, 외규장각 약탈)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쳐들어온 신미양요(1871, 어재연 항전) 후 척화비가 세워졌다.

  3. 1876년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4. 1880년~1881년개화 정책의 추진과 위정척사 운동
  5. 1882년임오군란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 ·1866년·1871년
  •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가 쳐들어온 병인양요(1866, 외규장각 약탈)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쳐들어온 신미양요(1871, 어재연 항전) 후 척화비가 세워졌다.

병인양요 vs 신미양요

  • ·병인양요(1866)는 프랑스·병인박해 구실·외규장각 약탈·양헌수, 신미양요(1871)는 미국·제너럴셔먼호 구실·어재연·수자기. '먼저 온 프랑스, 나중 온 미국'으로 구분.
VS

스토리텔링

광성보의 어재연 장군은 미군의 압도적 화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포탄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칼과 창으로, 나중에는 흙과 돌을 던지며 싸웠다. 미군 장교조차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다 죽는 군인들을 본 적이 없다'고 기록했다. 그의 군영에 걸렸던 장수 깃발 수자기는 전리품으로 미국에 넘어갔다가 136년 만에야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지키려는 자의 결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전투였다.

현대 비유

글로벌 대기업 두 곳(프랑스·미국)이 문을 안 여는 동네 가게에 잇달아 강제 방문 영업을 시도한 격이다. 가게 주인은 두 번 다 쫓아냈지만, 첫 번째 회사는 나가면서 가게의 귀중한 장부(외규장각 의궤)를 들고 가버렸고, 주인은 '영업 사절' 팻말(척화비)을 대문에 박아버렸다.

암기법

'병프외·신미어' — 병인양요는 프랑스·외규장각, 신미양요는 미국·어재연. 원인은 '병박·신셔' — 병인양요의 원인은 병인박해, 신미양요의 원인은 제너럴셔먼호.

말장난 암기

'병'원에 간 '프'랑스 환자(병인양요=프랑스), '신'나서 '미'국 간 여행객(신미양요=미국). 어재연의 '어'는 '어딜 감히!'의 어로 기억하자.

감정 연결

낯선 증기선과 대포 소리에 강화도 백성들은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목숨 걸고 침략자를 막아낸 자부심과, 소중한 왕실 기록을 눈앞에서 빼앗긴 분노가 뒤섞인 시대였다. 척화비의 강경한 문구에는 그 공포와 결기가 함께 새겨져 있다.

장면 상상

🌊 강화도 앞바다의 시커먼 이양선, 🔥 불타는 제너럴셔먼호, 📚 프랑스 군함에 실려 가는 의궤 상자들, ⚔️ 광성보에 나부끼다 내려지는 수자기, 🪨 길목마다 우뚝 선 척화비.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병인양요 vs 신미양요

병인양요(1866)는 프랑스·병인박해 구실·외규장각 약탈·양헌수, 신미양요(1871)는 미국·제너럴셔먼호 구실·어재연·수자기. '먼저 온 프랑스, 나중 온 미국'으로 구분.

제너럴셔먼호 사건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 평양)은 신미양요(1871)의 '원인'이지 신미양요 자체가 아니다. 사건과 보복 침공 사이에 5년의 간격이 있음을 기억하자.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오페르트는 독일 상인이며 남연군 묘 '도굴 미수' 사건이다. 병인·신미양요 같은 군사 침공이 아니고, 두 양요 사이(1868)에 위치한다.

관련 인물
흥선대원군양헌수한성근어재연박규수오페르트
관련 문화재·유물
외규장각 의궤척화비수자기광성보정족산성
서양 열강의 침략을 두 차례 격퇴하며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이 강화되었으나, 결과적으로 근대 문물 수용이 늦어져 이후 준비 없는 개항을 맞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