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945년 광복, 그러나 38도선 분할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신탁통치 결정으로 좌우가 갈라졌다.
1945년 광복, 그러나 38도선 분할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신탁통치 결정으로 좌우가 갈라졌다.
8·15 광복과 분단
카이로 회담(1943)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에서 일왕의 항복 방송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여운형은 이미 일제 패망을 예견하고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꾸려 '이제 우리 손으로 나라를 세우자'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거인이 38도선을 그어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었고,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신탁통치' 소식에 김구는 '또다시 남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며 격렬히 반대했다. 반면 좌익은 '임시 정부 수립이 핵심'이라며 회의 결정 지지로 돌아섰고, 어제까지 함께 만세를 부르던 사람들이 찬탁과 반탁으로 갈라져 서로를 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회사가 파산한 뒤 직원들이 새 회사를 세우려는데, 두 거대 투자사(미·소)가 각각 건물 위층과 아래층을 차지하고 '5년간 우리가 경영을 관리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직원들은 '관리라도 받고 회사부터 세우자'파와 '절대 남의 관리는 안 된다'파로 갈라져 싸우게 되었다.
광복 '사오'(45)년, 모스크바 3상 회의는 '임·미·신'(임시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신탁통치)으로 암기.
모스크바에서 '신탁'을 결정하니 나라가 '신났다가 탁' 막혔다. 38도선은 '삼팔'이 갈라놓은 '살벌'한 선.
35년 만에 되찾은 나라인데 다시 5년을 남의 관리 아래 있으라니, 당시 사람들에게 신탁통치는 식민 지배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공포였다. 해방의 감격이 반년 만에 분열의 절망으로 바뀐 비극을 기억하자.
🎉 태극기 물결 만세 행렬 → ✂️ 지도 위에 그어진 38도선 → 📜 모스크바발 신탁통치 전보 → 🔥 찬탁·반탁으로 갈라진 두 개의 시위 군중.
카이로 회담(1943)
카이로 회담은 '적당한 시기에 한국 독립'을 최초로 약속한 회담이고,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1945.12)는 광복 이후 신탁통치·임시 정부 수립을 결정한 회의다. 시점(광복 전/후)으로 구분하자.
얄타 회담(1945.2)
얄타 회담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밀약한 회담으로 광복 전에 열렸다. 38도선 분할 점령과 직결되는 배경이지 신탁통치 결정 회의가 아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vs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준은 광복 직후 여운형이 국내에서 조직한 단체이고, 임시 정부(김구)는 충칭에서 귀국한 세력이다. 여운형=건준, 김구=임정·반탁으로 인물과 짝지어 기억하자.
35년 식민 지배의 종식이자 새로운 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었으나, 동시에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분단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한 이중적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