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1592년 왜군 침입,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학익진)·김시민의 진주·권율의 행주 대첩과 곽재우 등 의병이 나라를 지켰고 1597년 명량, 1598년 노량으로 끝났다.
1592 개전 · 부산진 함락
20일 만에 한양 함락, 선조 의주 피난
수군과 의병의 반격
한산도 대첩(학익진) · 진주 대첩(김시민) · 곽재우 등 의병
행주 대첩 (1593)
권율, 관군과 백성이 함께 방어
정유재란 · 명량 (1597)
13척으로 133척 격파
노량 해전 (1598)
이순신 전사, 전쟁 종결
1592년 왜군 침입,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학익진)·김시민의 진주·권율의 행주 대첩과 곽재우 등 의병이 나라를 지켰고 1597년 명량, 1598년 노량으로 끝났다.
임진왜란
진주 김시민 vs 행주 권율
전쟁 1년 전,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가 된 이순신은 홀로 거북선을 만들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왕이 백성을 버리고 북으로 도망치던 그 시각, 그는 남해에서 연전연승하며 왜군의 보급로를 잘랐다. 붉은 옷의 곽재우 같은 의병장들은 관군이 무너진 땅에서 낫과 죽창으로 고향을 지켰다. 모함으로 백의종군까지 겪은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장계와 함께 명량에서 기적을 만들고, 마지막 노량 바다에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별이 됐다.
본사 경영진(조정)이 도망간 사이 지역 지사장(이순신)과 자영업자 연합(의병)이 회사를 지켜낸 격이다. 학익진은 학 날개 모양 포위 섬멸전으로, 상대를 U자로 감싸 화력을 집중하는 전술이다.
3대 대첩은 '한진행'에 '이김권' — 한산도 이순신, 진주 김시민, 행주 권율. 해전 순서는 '한(1592)→명(1597)→노(1598)'.
'김시민은 진주 시민을 지켰다', '권율은 행주치마 두르고 행주에서 싸웠다', '명량에서 왜군은 명(明)을 다했다'.
임금이 버린 나라를 이름 없는 백성들이 목숨으로 지켰다. 12척 대 133척 앞에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던 그 절박함이 이 전쟁의 심장이다.
학 날개처럼 활짝 펼쳐진 판옥선 함대가 왜선을 감싸 안는 한산도 앞바다, 불화살이 밤하늘을 가르는 노량의 마지막 해전. 🦢⛵🔥
진주 김시민 vs 행주 권율
진주 대첩은 김시민(1592), 행주 대첩은 권율(1593). 장수를 바꿔 내는 최다 빈출 함정이다.
한산도 vs 명량 vs 노량
한산도(1592, 학익진)→명량(1597, 13척)→노량(1598, 이순신 전사) 순. 학익진이 나오면 무조건 한산도다.
훈련도감 vs 별기군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 설치된 삼수병(포수·사수·살수) 부대, 별기군은 1881년 개항기 신식 군대. 시대가 300년 차이다.
민관군이 함께 국난을 극복한 7년 전쟁으로, 조선 사회 전반과 명·청 교체 등 동아시아 질서를 뒤흔든 대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