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조광조는 현량과·소격서 폐지·위훈 삭제 등 급진 개혁을 추진하다 1519년 기묘사화로 제거됐다.
조광조는 현량과·소격서 폐지·위훈 삭제 등 급진 개혁을 추진하다 1519년 기묘사화로 제거됐다.
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기묘사화
현량과 vs 과거제
조광조는 유배 중이던 김굉필에게 배운 원칙주의자로, 타협을 모르는 남자였다. 중종의 총애를 업고 등장한 그는 '나라를 성리학 교과서대로 만들겠다'며 브레이크 없는 개혁 열차를 몰았다. 왕이 좋아하던 도교 제사도 미신이라 폐지시키고, 마침내 공신들의 훈장까지 가짜라며 빼앗으려 하자 온 기득권이 그를 죽이기로 뭉쳤다. 벌레가 갉아 만든 '주초위왕' 넉 자 앞에서 중종은 총애하던 신하를 버렸고, 조광조는 사약을 받으면서도 임금을 향한 충심을 시로 남겼다.
외부에서 영입된 젊은 혁신 임원이 공채 개편(현량과), 미신성 사내 행사 폐지(소격서 폐지)까지는 성공했지만, 창업 공신들의 스톡옵션 회수(위훈 삭제)를 건드리는 순간 이사회에서 축출된 격이다.
조광조 개혁은 '현소위향' — 현량과, 소격서 폐지, 위훈 삭제, 향약 보급. 끝은 기묘사화(1519).
'조광조가 너무 밝게(광) 비추니 기묘하게 타 죽었다'. 현량과는 '현명하고 어진(량) 사람 추천 전형', 요즘 말로 수시 학종이다.
개혁이 옳다는 확신과, 옳음만으로는 정치가 되지 않는다는 비극 사이. 사약을 앞에 두고도 임금을 원망하지 않은 그의 마지막은 조선 선비의 순도 그 자체였다.
꿀 바른 나뭇잎 위 '주초위왕' 네 글자를 갉아 먹는 벌레들, 그리고 흰 도포를 입고 사약 사발 앞에 단정히 앉은 조광조. 🍃🐛☠️
현량과 vs 과거제
현량과는 학문·덕행을 갖춘 인물을 '추천'으로 선발하는 제도. 시험 중심 과거제와 선발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선지 포인트.
김종직(무오사화)
김종직은 성종 대 사림의 영수로 무오사화의 발단(조의제문), 조광조는 중종 대 개혁가로 기묘사화의 주인공. 세대가 다르다.
중종반정 vs 인조반정
중종반정(1506)은 연산군 축출, 인조반정(1623)은 광해군 축출. 조광조는 중종반정 '이후' 등용된 인물이다.
성리학적 이상 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 한 최초의 본격적 시도로, 실패했음에도 사림 정치의 방향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