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519년

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기묘사화

👑 중종★★★☆☆자주 출제추정 ·최근 20회 중 9회 · 3회 중 1회꼴 출제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1506) 이후, 중종은 공신 세력을 견제할 카드로 신진 사림 조광조를 파격 발탁했다. 조광조는 유교적 이상 정치(왕도 정치) 실현을 목표로 개혁을 쏟아냈다.

학문과 덕행으로 인재를 추천 선발하는 현량과를 실시해 사림을 대거 등용했고, 도교 제사 기관인 소격서를 미신이라며 폐지했으며, 『소학』과 향약을 보급해 성리학 질서를 향촌까지 확산시켰다. 그러나 중종반정 공신 4분의 3의 공훈이 거짓이라며 위훈 삭제를 단행하자 훈구 세력은 물론 중종마저 등을 돌렸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 글자를 써 벌레가 갉아 먹게 했다는 모함 속에, 조광조는 1519년 기묘사화로 유배 후 사사됐다. 4년의 개혁은 실패했지만 그의 이상은 이후 사림 정치의 정신적 좌표가 됐다.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왕→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485년성종과 경국대전 체제 완성
  2. 1498년4대 사화
  3. 1519년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기묘사화

    조광조는 현량과·소격서 폐지·위훈 삭제 등 급진 개혁을 추진하다 1519년 기묘사화로 제거됐다.

  4. 1592년임진왜란
  5. 1608년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인조반정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조광조의 개혁 정치와 기묘사화

  • ·1519년
  • ·조광조는 현량과·소격서 폐지·위훈 삭제 등 급진 개혁을 추진하다 1519년 기묘사화로 제거됐다.

현량과 vs 과거제

  • ·현량과는 학문·덕행을 갖춘 인물을 '추천'으로 선발하는 제도. 시험 중심 과거제와 선발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선지 포인트.
VS

스토리텔링

조광조는 유배 중이던 김굉필에게 배운 원칙주의자로, 타협을 모르는 남자였다. 중종의 총애를 업고 등장한 그는 '나라를 성리학 교과서대로 만들겠다'며 브레이크 없는 개혁 열차를 몰았다.

왕이 좋아하던 도교 제사도 미신이라 폐지시키고, 마침내 공신들의 훈장까지 가짜라며 빼앗으려 하자 온 기득권이 그를 죽이기로 뭉쳤다. 벌레가 갉아 만든 '주초위왕' 넉 자 앞에서 중종은 총애하던 신하를 버렸고, 조광조는 사약을 받으면서도 임금을 향한 충심을 시로 남겼다.

현대 비유

외부에서 영입된 젊은 혁신 임원이 공채 개편(현량과), 미신성 사내 행사 폐지(소격서 폐지)까지는 성공했지만, 창업 공신들의 스톡옵션 회수(위훈 삭제)를 건드리는 순간 이사회에서 축출된 격이다.

암기법

조광조 개혁은 '현소위향' — 현량과, 소격서 폐지, 위훈 삭제, 향약 보급. 끝은 기묘사화(1519).

말장난 암기

'조광조가 너무 밝게(광) 비추니 기묘하게 타 죽었다'. 현량과는 '현명하고 어진(량) 사람 추천 전형', 요즘 말로 수시 학종이다.

감정 연결

개혁이 옳다는 확신과, 옳음만으로는 정치가 되지 않는다는 비극 사이. 사약을 앞에 두고도 임금을 원망하지 않은 그의 마지막은 조선 선비의 순도 그 자체였다.

장면 상상

꿀 바른 나뭇잎 위 '주초위왕' 네 글자를 갉아 먹는 벌레들, 그리고 흰 도포를 입고 사약 사발 앞에 단정히 앉은 조광조.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현량과 vs 과거제

현량과는 학문·덕행을 갖춘 인물을 '추천'으로 선발하는 제도. 시험 중심 과거제와 선발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선지 포인트.

김종직(무오사화)

김종직은 성종 대 사림의 영수로 무오사화의 발단(조의제문), 조광조는 중종 대 개혁가로 기묘사화의 주인공. 세대가 다르다.

중종반정 vs 인조반정

중종반정(1506)은 연산군 축출, 인조반정(1623)은 광해군 축출. 조광조는 중종반정 '이후' 등용된 인물이다.

관련 인물
조광조중종김굉필남곤심정
관련 문화재·유물
소학여씨향약 언해심곡서원
성리학적 이상 정치를 현실에 구현하려 한 최초의 본격적 시도로, 실패했음에도 사림 정치의 방향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