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

427년

장수왕의 평양 천도와 남진 정책

👑 장수왕★★★★☆매우 중요추정 ·최근 20회 중 11회 · 2회 중 1회꼴 출제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천도해 남진 정책을 펴고 475년 백제 한성을 함락시켰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충주 고구려비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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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372년소수림왕의 체제 정비
  2. 400년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
  3. 427년장수왕의 평양 천도와 남진 정책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천도해 남진 정책을 펴고 475년 백제 한성을 함락시켰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충주 고구려비를 남겼다.

  4. 501년무령왕의 백제 중흥
  5. 503년지증왕, 나라 이름 신라와 왕 칭호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장수왕의 평양 천도와 남진 정책

  • ·427년
  •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천도해 남진 정책을 펴고 475년 백제 한성을 함락시켰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충주 고구려비를 남겼다.

광개토대왕릉비

  • ·비의 주인공은 광개토대왕이지만 세운 왕은 장수왕(414). 업적 문제에서 '릉비 건립'은 장수왕 선지로 나온다.
VS

스토리텔링

장수왕은 위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부담을 실력으로 이겨낸 왕이다. 즉위하자 먼저 거대한 비석(광개토대왕릉비)을 세워 아버지를 신화로 만들고, 그 권위를 등에 업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수백 년 수도 국내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이사한 것이다. 기득권 귀족들은 반발했지만 그는 '고구려의 미래는 남쪽에 있다'며 밀어붙였다. 그리고 48년을 기다린 끝에 475년, 바둑에 빠진 개로왕의 한성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98세까지 살아 이름 그대로 '장수'한 왕은, 기다림이 가장 무서운 무기임을 증명했다.

현대 비유

본사를 지방 거점(국내성)에서 시장 중심지(평양)로 옮기며 남부 시장 공략을 선언한 대기업이다. 경쟁 2·3위 업체(백제·신라)가 급히 동맹을 맺었지만, 결국 1위 기업이 경쟁사 본사 사옥(한성)을 인수해 버린 격이다.

암기법

장수왕 '사이칠 평양, 사칠오 한성' — 427 평양 천도, 475 한성 함락. 비석 2개는 '광개토대왕릉비(414)·충주 고구려비'.

말장난 암기

'장수'왕이라 오래 살았다(98세, 재위 79년). 427은 '사(4)는 곳을 이(2)사했다, 치(7)!' 475는 '사(4)정없이 치(7)고 오(5)른 한성 함락'.

감정 연결

한성이 불타던 날, 백제인들은 500년 도읍을 잃고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반면 평양의 고구려인들은 한반도의 절반이 자국 영토가 된 최전성기의 자부심을 만끽했다. 한 사건이 두 민족의 정반대 기억이 된 것이다.

장면 상상

🏯 평양의 새 궁궐 위로 고구려 삼족오 깃발이 펄럭이고, 남쪽 한성은 화염에 휩싸인다 🔥. 남한강 강가에 우뚝 선 충주 고구려비가 국경 표지판처럼 서 있는 장면.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광개토대왕릉비

비의 주인공은 광개토대왕이지만 세운 왕은 장수왕(414). 업적 문제에서 '릉비 건립'은 장수왕 선지로 나온다.

진흥왕 순수비

충주 고구려비는 한반도 유일의 고구려 비석(장수왕대 남진의 증거),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의 영토 확장 기념비. 비석 사진 문제의 단골 함정.

웅진 천도의 주체

평양 천도는 고구려 장수왕(427, 공세적 선택), 웅진 천도는 백제 문주왕(475, 한성 함락 후 피난성 천도). 같은 해 475년에 얽힌 두 나라를 구분.

관련 인물
장수왕개로왕문주왕비유왕눌지왕
관련 문화재·유물
광개토대왕릉비충주 고구려비
고구려 전성기의 절정으로, 한강 유역 지배권이 백제에서 고구려로 넘어갔고 남진 압박이 나제 동맹이라는 새 국제 구도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