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년
신라는 675년 매소성, 676년 기벌포에서 당군을 격파하고 문무왕 대에 삼국 통일을 완성했다.
신라는 675년 매소성, 676년 기벌포에서 당군을 격파하고 문무왕 대에 삼국 통일을 완성했다.
나당 전쟁과 삼국 통일
무열왕(김춘추)의 업적
문무왕은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되는 국제 정치의 냉혹함을 정면으로 받아낸 왕이었다. 당이 신라마저 계림도독부라는 이름의 식민지로 만들려 하자, 그는 세계 최강 제국과의 전쟁이라는 도박을 택했다. 어제까지 싸우던 백제·고구려 유민에게 손을 내밀어 한편으로 만들고, 매소성에서 20만 당군을, 기벌포에서 당의 함대를 연이어 꺾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나라 걱정뿐이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왜적을 막겠다'며 바다에 묻어 달라 유언했다. 경주 앞바다의 수중릉 대왕암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던 통일 군주의 마지막 맹세다.
공동 인수를 진행한 거대 파트너(당)가 지분을 독식하려 들자, 소송과 전면 대결로 경영권을 지켜낸 회사가 신라다. 어제의 경쟁사 직원들(백제·고구려 유민)까지 채용해 원팀을 만든 것이 승부수였다.
'매675, 기676' — 매소성이 먼저(육군), 기벌포가 나중(수군). '매기'(물고기 매기)가 땅에서 바다로 뛰었다고 연상하면 순서가 안 헷갈린다.
'매소성'에서 당군을 '매'우 '소'탕하고, '기벌포'에서 '기'어이 '벌'을 줘 쫓아냈다. 676은 '육(6)지도 치(7)우고 바다도 육(6)시했다'.
10년 가까운 전쟁 끝에 당군이 물러가던 날, 삼국의 백성들은 처음으로 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동시에 대동강 너머 옛 고구려 땅을 바라보는 아쉬움도 함께 남았다. 성취와 미완이 공존하는 감정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 기벌포 앞바다에서 당의 함선이 불타 가라앉고, 매소성 벌판에는 버려진 당군의 군마 3만 필이 흩어져 있다 🐎. 동해 대왕암 위로 파도가 부서지며 용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장면 🐉.
무열왕(김춘추)의 업적
무열왕은 나당 동맹을 성사시키고 백제 멸망(660)까지 이끈 왕, 통일 완성(676)은 아들 문무왕. '시작은 무열, 완성은 문무'로 구분.
매소성과 기벌포의 순서·성격
매소성(675)은 육군 대승, 기벌포(676)는 수군 대승. 순서 배열형에서 두 전투를 바꿔 놓는 오답이 흔하다.
통일신라의 북쪽 경계
삼국 통일 직후 경계는 대동강~원산만 이남이며, 압록강·두만강까지가 아니다. 옛 고구려 북부는 이후 발해가 계승한다는 점까지 세트로 출제된다.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을 무력으로 저지하고 이룬 최초의 민족 통일로, 삼국의 문화가 융합된 민족 문화의 토대가 여기서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