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경
옥저는 민며느리제·가족 공동 무덤, 동예는 무천(10월)·책화·단궁·과하마·반어피, 둘 다 왕 없이 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는 민며느리제·가족 공동 무덤, 동예는 무천(10월)·책화·단궁·과하마·반어피, 둘 다 왕 없이 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와 동예 — 왕 없는 동해안의 두 나라
고구려의 서옥제
옥저의 어부는 새벽마다 그물을 걷으며 한숨을 쉬었다. 기껏 잡은 생선과 애써 구운 소금의 몫은 고구려 사자가 먼저 챙겨 갔기 때문이다. 왕이라도 있으면 맞서 보련만, 읍군과 삼로는 제 읍락 하나 지키기도 벅찼다. 그래서 집안의 노동력이 귀했던 옥저 사람들은 며느릿감을 어릴 때 미리 데려와 키웠고, 죽어서라도 가족이 흩어지지 말자며 뼈를 한 목곽에 모았다. 산 너머 동예 사람들은 남의 읍락 땅을 밟으면 소와 말로 물어내는 책화를 지키며, 10월 무천 때만큼은 시름을 잊고 춤을 추었다.
옥저와 동예는 대기업(고구려) 옆에서 납품(공납)하며 살아가는 협력 업체다. 자체 브랜드(왕)를 끝내 못 만들고 지역 지사장(읍군·삼로) 체제로 운영되다 결국 인수 합병당했다. 책화는 오늘날 지자체 경계 분쟁 시 물어 주는 손해 배상 제도와 같다.
옥저는 '민·가·공(민며느리제, 가족 공동 무덤, 어물·소금 공납)', 동예는 '무·책·족·단과반(무천, 책화, 족외혼, 단궁·과하마·반어피)'으로 끊어 외운다. 특산물은 학원 '단과반' 수강하는 동예로 기억하라.
옥저는 며느리를 '미리(민)' 데려오는 민며느리제, 동예는 경계 넘으면 '책'임지고 '화'끈하게 배상하는 책화다. 단궁·과하마·반어피는 '단과반' 세 글자에 다 들어 있으니 동예는 단과반 듣는 모범생이다.
왕도 없이 강대국에 어물과 소금을 바치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서러움, 그래도 죽은 뒤에는 가족 곁에 눕고 싶었던 옥저 사람들의 애틋함을 떠올리면 가족 공동 무덤이 잊히지 않는다.
🌊 동해안 해안가, 옥저 쪽엔 🐟 생선과 🧂 소금 가마니를 지고 고구려로 가는 공납 행렬과 뼈를 모신 큰 목곽 ⚰️, 동예 쪽엔 🏹 단궁을 멘 사냥꾼과 조랑말 🐴 과하마, 바다표범 🦭 가죽, 경계석 앞에서 소를 끌고 와 배상하는 책화 장면을 좌우로 나눠 그려라.
고구려의 서옥제
민며느리제는 어린 '신부'가 남자 집으로 가서 자라는 매매혼 성격, 서옥제는 '신랑'이 처가의 서옥에 들어가 사는 제도다. 옥저는 며느리가 오고, 고구려는 사위가 간다.
부여·고구려의 형사취수제
형사취수제는 부여와 고구려의 풍속이고 옥저·동예와는 무관하다. 혼인 풍속을 나라별로 묶어서 출제하니 옥저=민며느리제, 동예=족외혼으로 고정하라.
삼한의 천군과 소도
동예의 책화는 읍락 '경계' 존중 풍속이고, 삼한의 소도는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이다. 경계 침범 배상이면 책화, 죄인이 숨어도 못 잡는 곳이면 소도다.
연맹 왕국으로 성장하지 못한 군장 국가의 전형으로, 지리적 조건과 강대국의 압박이 국가 발전 단계를 좌우함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