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7년
졸본의 고구려는 5부 연맹과 제가회의로 운영되었고, 10월 동맹·서옥제·부경(약탈 경제)이 핵심 키워드다.
졸본의 고구려는 5부 연맹과 제가회의로 운영되었고, 10월 동맹·서옥제·부경(약탈 경제)이 핵심 키워드다.
초기 고구려 — 5부와 제가회의, 서옥제
옥저의 민며느리제
부여 왕자들의 견제에 목숨이 위태로워진 주몽은 활 하나 들고 남쪽으로 도망쳐 졸본의 산골짜기에 나라를 열었다. 그런데 막상 정착해 보니 산비탈뿐이라 백성을 먹일 곡식이 나오지 않았다. 주몽과 후계자들은 결단했다. 밭이 없으면 남의 창고를 열게 하면 된다. 고구려 남자들은 말을 타고 나가 주변 소국을 복속시켜 공물을 거두었고, 집집마다 부경을 세워 전리품을 쌓았다. 배고픔이 만든 헝그리 정신이 훗날 광개토대왕까지 이어지는 정복 국가 DNA가 되었다.
초기 고구려는 자원이 없는 스타트업이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는 것과 같다. 자체 매출(농경지)이 없으니 남의 회사(주변 소국)를 흡수해 현금(공물)을 확보했고, 이사회(제가회의)가 대표 못지않은 발언권을 가진 연맹형 지배 구조였다.
고구려 세트는 '오제동서부'로 끊어 외워라 — 오(5부)·제(제가회의)·동(동맹 10월)·서(서옥제)·부(부경). 5부는 계루부가 왕족이라는 것만 콕 집어 두면 된다.
사위가 서(西)쪽이 아니라 신부 집 뒤에 '서' 있는 집이 서옥, 즉 처가에 서 있다가 애 크면 데려가는 제도다. 부경은 '부억(부엌) 옆 경비 창고'로 외우면 약탈품 보관 창고라는 기능까지 따라온다.
밭 한 뙈기 없는 산골에서 겨울을 나야 했던 백성들에게 약탈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사위가 처가에서 몇 년씩 일해 주고 나서야 아내를 데려갈 수 있었던 서옥제에는 노동력 하나가 아쉬웠던 산악 국가의 절박함이 배어 있다.
⛰️ 험준한 졸본 산성 아래 🏇 말 달리는 무사들, 집집마다 세워진 작은 다락 창고 부경 🏚️, 10월 국동대혈 동굴 앞 🕯️ 동맹 제사, 신부 집 뒤꼍의 작은 서옥 🏠에서 눈치 보는 새신랑까지 한 장면으로 묶어라.
옥저의 민며느리제
서옥제는 '남자'가 처가(서옥)에 들어가 사는 것이고, 민며느리제는 '여자'가 어릴 때 미리 시집에 가서 크는 것이다. 이동하는 사람의 성별로 구분하면 절대 틀리지 않는다.
부여의 사출도
고구려 5부는 왕 아래 연맹을 이룬 부족 단위이고 제가회의라는 합의 기구로 국정을 논했다. 부여는 가들이 사출도를 영역으로 나눠 다스렸다. 회의체가 언급되면 고구려다.
신라의 화백회의
제가회의는 초기 고구려 가들의 회의이고, 화백회의는 신라 귀족의 만장일치 회의다. 만장일치라는 단어가 붙으면 무조건 신라 화백회의다.
척박한 환경을 정복 활동으로 극복하며 성장한 고구려 초기 체제는 이후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해 동북아시아의 강자가 되는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