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김주열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전국이 봉기해 이승만을 하야시킨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이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김주열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전국이 봉기해 이승만을 하야시킨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이다.
4·19 혁명
4·19 혁명 vs 6월 민주 항쟁
85세의 이승만은 12년 집권에도 권력을 놓지 못했고, 측근들은 병약한 그의 후계로 이기붕을 부통령에 앉히려 사상 최악의 부정 선거를 설계했다. 마산상고 입학을 앞둔 17세 김주열은 부정 선거 규탄 시위에 나섰다가 실종되었고, 27일 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바다에서 떠올랐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자 '더는 참을 수 없다'며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거리로 나섰고, 경무대 앞 발포에도 시위는 꺾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침묵하던 대학교수들마저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며 거리로 나서자, 이승만은 결국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겠다'는 말을 남기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조작으로 우승을 가로챈 오디션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이 분노해 총사퇴를 이끌어낸 상황과 같다. 투표(문자 투표) 조작이 들통나고 피해자의 증거가 공개되자 시청자(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제작진(정권) 전원을 교체시킨 셈이다.
'삼일오 부정, 사일구 혁명, 사이륙 하야' 숫자 3종 세트로 암기. 결과는 '내·양·장'(내각 책임제, 양원제, 장면 내각).
3·15는 '삼일오'만에 들통난 부정 선거, 4·19에 국민이 '사(4)정없이 일(1)어나 구(9)해낸' 민주주의. 사사오입은 '반올림으로 헌법도 올림'한 억지 개헌.
열일곱 살 소년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어른들이 느꼈을 부끄러움과 분노를 상상해 보자. '학생들이 흘린 피에 어른이 보답하자'던 교수단의 구호에는 미안함과 결기가 함께 담겨 있었다.
🗳️ 미리 채워진 부정 투표함 → 🌊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소년 → ✊ 경무대로 향하는 학생 물결 → 📜 교수단의 시국 선언 행진 → 🛫 하와이로 떠나는 이승만.
4·19 혁명 vs 6월 민주 항쟁
4·19(1960)는 3·15 부정 선거가 원인이고 결과는 이승만 하야와 내각 책임제 개헌, 6월 항쟁(1987)은 4·13 호헌 조치가 원인이고 결과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다. '원인-결과 개헌 내용'으로 구분하자.
장면 내각 vs 장면 부통령
장면은 1956년 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자, 4·19 이후 내각 책임제 하의 국무총리다. 4·19 이후 체제는 '대통령 윤보선-총리 장면'이며 실권은 총리 장면에게 있었다.
발췌 개헌 vs 사사오입 개헌
발췌 개헌(1952)은 대통령 직선제 도입, 사사오입 개헌(1954)은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 철폐다. 둘 다 4·19 이전 이승만 장기 집권의 배경으로 출제된다.
학생과 시민이 주도하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한 민주주의 혁명으로, 헌법 전문에 계승 정신이 명시되었고 이후 모든 민주화 운동의 원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