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8년
태종이 다져 놓은 안정된 왕권 위에서 세종은 조선의 황금기를 열었다. 집현전을 확대해 젊은 인재를 키우고, 의정부 서사제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했다.
1443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해 지배층의 문자 독점을 깨뜨렸다. 국방에서는 최윤덕이 4군,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해 오늘날 국경선의 원형인 압록강~두만강 선을 확보했고, 이종무를 보내 쓰시마섬을 정벌했다.
과학 분야에서는 장영실이 측우기·자격루·앙부일구를 만들었고, 한양 기준의 자주적 역법서 『칠정산』이 편찬됐다.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까지, 민본과 실용 정신이 모든 분야를 관통한 시대였다.
훈민정음 창제
0 년
훈민정음 반포
0 년
창제 당시 글자 수
0 자
4군 (압록강)
6진 (두만강)
세종은 훈민정음을 1443년 창제·1446년 반포하고, 집현전·4군 6진·측우기·칠정산·농사직설로 조선의 전성기를 열었다.
셋째 아들이라 왕이 될 일이 없던 충녕대군은 책만 파던 공부벌레였다. 그러나 형 양녕대군이 폐세자되며 왕위에 오르자, 그는 공부의 힘을 통치로 증명한다.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을 보며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펴지 못한다'고 가슴 아파했고, 눈병에 시달리면서도 직접 문자 연구에 매달렸다. 신하들이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들면 오랑캐가 된다며 반대했지만, 세종은 백성의 편에 서서 훈민정음을 밀어붙였다.
훈민정음 창제는 소수만 쓰던 고가 장비(한자)의 시대에 전 국민 무료 스마트폰(한글)을 출시한 급의 혁신이다. 집현전은 국가가 운영한 최고 싱크탱크, 즉 조선판 국책연구소다.
'사사(1443) 창제, 사륙(1446) 반포'로 연도를 묶고, 북방 개척은 '최사김육' — 최윤덕 4군, 김종서 6진.
최윤덕은 '사(4)람이 덕이 있어' 4군, 김종서는 '육(6)식하는 백두산 호랑이'라 6진. 칠정산은 '한양 하늘을 칠(7)판에 정리한 계산'.
제 이름 석 자도 못 쓰고 관아에 억울함 한 줄 못 올리던 백성이, 스물여덟 자를 배워 처음 제 이름을 써 보던 순간의 감격을 상상해 보라.
밤늦은 집현전의 호롱불, 비의 양을 재는 청동 측우기, 스스로 종을 치는 자격루의 물줄기,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단정한 글자들. 📜🌧️⏰🇰🇷
창제 1443 vs 반포 1446
창제와 반포는 3년 차이. 사료에 '반포'가 나오면 1446, 훈민정음 해례본도 1446년 간행이다.
4군 최윤덕 vs 6진 김종서
압록강 쪽 4군은 최윤덕, 두만강 쪽 6진은 김종서. 인물을 바꿔 내는 게 단골 함정.
칠정산 vs 천상열차분야지도
칠정산은 세종 대 역법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태조 대 천문도(돌에 새긴 별지도). 시기와 성격이 모두 다르다.
농사직설 vs 농가집성
『농사직설』은 세종 대 우리 풍토 농법 정리, 『농가집성』은 효종 대 신속이 편찬. '직설은 세종의 직설적 민본'.
민족 문자 훈민정음 창제로 민본 이념을 실현하고, 과학·국방·문화 전 분야에서 조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