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세자 책봉에서 밀려났다. 그는 1차 왕자의 난(1398)으로 정도전과 세자 방석을 제거하고, 2차 왕자의 난(1400)에서 형 방간을 꺾은 뒤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6조 직계제를 시행해 국정을 직접 장악했다. 공신과 왕족의 사병을 혁파해 군사권을 일원화했고, 16세 이상 남자에게 호패를 차게 하는 호패법으로 인구를 파악해 조세·군역의 기반을 다졌다.
신문고를 설치해 백성의 억울함을 듣는 창구도 만들었다. 피로 잡은 권력이었지만, 그가 다진 강력한 왕권 위에서 아들 세종의 태평성대가 가능했다.
6조 직계제 (태종·세조)
의정부 서사제 (세종)
왕자의 난으로 집권한 태종이 6조 직계제·사병 혁파·호패법·신문고로 왕권을 강력하게 다졌다.
이방원은 아버지의 건국을 위해 정몽주까지 제거한 행동파였지만, 정작 세자 자리는 어린 이복동생 방석에게 돌아갔다. 배후에는 재상 중심 국가를 꿈꾸며 왕자들의 힘을 빼려던 정도전이 있었다.
참을 만큼 참은 이방원은 두 번의 난으로 정도전과 형제들을 쓰러뜨리고 스스로 왕이 된다. 그리고 즉위하자마자 자신이 했던 방식 그대로 누군가 반란을 일으킬 수 없도록, 사병을 없애고 모든 권력을 왕에게 집중시켰다.
치열한 승계 다툼 끝에 회장이 된 창업주 아들이, 계열사 사장단(의정부)을 건너뛰고 본부장들(6조)에게 직접 보고받으며 사조직(사병)을 전부 해체시킨 격이다. 호패법은 전 국민 주민등록증 발급, 신문고는 국민신문고 앱의 원조다.
태종의 4대 정책은 '육사호신' — 육조 직계제, 사병 혁파, 호패법, 신문고.
태종은 '내가 육(6)성으로 직접 보고받겠다'며 6조 직계제를 했다. 호패는 '호주머니 속 패스포트'.
형제의 피를 밟고 오른 왕좌였기에 태종은 누구보다 반란의 공포를 잘 알았다. 그 불안이 오히려 조선에서 가장 치밀한 왕권 강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한밤중 경복궁으로 향하는 갑옷 입은 이방원의 군사들, 그리고 대궐 앞에 매달린 커다란 북(신문고)을 두드리는 백성. ⚔️🥁🪪
의정부 서사제(세종)
6조 직계제는 왕권 강화(태종·세조), 의정부 서사제는 왕권·신권 조화(세종). '직계=직진 왕권, 서사=서로 상의'로 구분.
호패법 vs 호포법
호패법은 태종의 신분증 제도, 호포법은 흥선대원군이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은 제도. 글자 하나 차이의 대표 낚시.
신문고 부활(영조)
신문고 설치는 태종, 폐지됐다가 부활시킨 왕은 영조. '설치 태종, 부활 영조'.
공신·외척 세력을 누르고 국왕 중심 통치 체제를 확립해 조선 초 왕권의 기틀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