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1912~1918년

토지 조사 사업

★★★☆☆자주 출제추정 ·최근 20회 중 7회 · 3회 중 1회꼴 출제

일제가 기한부 신고제로 토지 소유권을 조사해 미신고지와 공유지를 빼앗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긴 경제 수탈의 출발점.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910년대무단 통치
  2. 1912~1918년토지 조사 사업

    일제가 기한부 신고제로 토지 소유권을 조사해 미신고지와 공유지를 빼앗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긴 경제 수탈의 출발점.

  3. 1919년3·1 운동
  4. 1919년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5. 1919년의열단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토지 조사 사업

  • ·1912~1918년
  • ·일제가 기한부 신고제로 토지 소유권을 조사해 미신고지와 공유지를 빼앗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긴 경제 수탈의 출발점.

산미 증식 계획(1920~1934)

  • ·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대 '소유권' 수탈,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 '쌀' 수탈. 신고제가 나오면 토지 조사, 증산·수탈량이 나오면 산미 증식이다.
VS

스토리텔링

충청도 농민 박 서방은 할아버지 대부터 부치던 문중 땅이 있었다.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기한 내 서류 신고'를 하라는데, 글도 모르고 절차도 복잡해 기한을 넘기고 말았다. 몇 달 뒤 그 땅의 주인은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되어 있었고, 박 서방은 자기 조상 땅에서 소작료를 바치는 처지가 되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신세. 결국 그는 가족을 이끌고 만주행 기차에 올랐다. 수십만 농민이 같은 길을 걸었다.

현대 비유

정부가 '앱으로 기한 내에 부동산 등기를 재신고하지 않으면 국가 소유'라고 공지해 놓고, 스마트폰이 없는 어르신들의 집을 빼앗아 특정 기업에 헐값에 판 것과 같다.

암기법

'토신동회' — 토지 조사 사업은 신고제, 동양척식주식회사, 회사령 세트. 1912년 토지조사령, 1910년 회사령, 둘 다 1910년대 수탈 정책으로 묶어 암기.

말장난 암기

토지 조사 사업은 '조사'가 아니라 '몰수'였다. 동양척식(拓殖)주식회사는 '척' 보면 '식'민지 수탈 회사. 신고 안 하면 '신고식' 치르듯 땅을 빼앗겼다.

감정 연결

대대로 일군 땅을 서류 한 장 때문에 빼앗긴 농민의 억울함. 고향을 등지고 만주행 열차에 오르며 흘린 눈물이 이 사업의 본질이다.

장면 상상

측량 기사가 논밭에 말뚝을 박고, 그 옆에서 서류 뭉치를 든 관리가 농민을 내쫓는 장면. 지평선 너머로 만주행 기차 연기.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산미 증식 계획(1920~1934)

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대 '소유권' 수탈,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 '쌀' 수탈. 신고제가 나오면 토지 조사, 증산·수탈량이 나오면 산미 증식이다.

회사령 폐지(1920)

회사령 제정(1910)은 허가제로 민족 자본 억압, 폐지(1920)는 신고제 전환으로 일본 자본의 조선 진출 확대 목적. 방향이 정반대다.

동학 농민군의 토지 균분 요구

폐정개혁안의 토지 분배는 1894년 반봉건 개혁 요구이고, 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대 일제의 수탈 정책이다.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

관련 인물
데라우치 마사타케
관련 문화재·유물
토지조사령 문서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토지 대장
식민지 경제 수탈의 토대를 놓은 사업으로, 조선의 농민층을 해체하고 식민지 지주제를 강화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의 국외 이주는 만주·연해주 독립운동의 인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