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7년
윤관은 신기군·신보군·항마군의 별무반을 편성해 1107년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윤관은 신기군·신보군·항마군의 별무반을 편성해 1107년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윤관의 별무반과 동북 9성
삼별초
1104년, 문신 출신 윤관은 여진 기병에게 참패하고 돌아왔다. 패장이 된 그는 변명 대신 냉정한 분석을 내놓았다. 적은 말을 타는데 우리는 걸어 다니니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왕을 설득해 말 가진 자는 기병으로, 승려까지 항마군으로 끌어모아 별무반을 만들었다. 3년 뒤 그는 설욕에 성공해 동북 9성을 쌓고 국경비를 세웠지만, 지키기 어려운 땅을 반환해야 했을 때 조정의 비난을 홀로 뒤집어썼다. 실패에서 배워 준비한 자의 승리, 그리고 승리 뒤의 씁쓸함까지 담긴 이야기다.
경쟁사에 시장을 뺏긴 기업이 패인을 분석해 전담 TF(별무반)를 꾸리고 신사업 거점 9곳(동북 9성)을 세웠지만, 운영비 부담으로 결국 철수한 사업 확장 스토리다. 기병 대응 별무반은 상대 신기술에 맞선 맞춤형 개발팀이었다.
별무반은 '신신항'. 신기군(기병), 신보군(보병), 항마군(승병). '신신당부하며 항복을 받으러 간다'로 외우자. 동북 9성 1107년은 '11월 7일 윤관 생일 파티'로 연상.
신기군은 말 타는 게 '신기'한 기병, 신보군은 '신발'로 걷는 보병, 항마군은 마귀에 '항'거하는 스님 부대다. 여진에게 9성을 돌려준 건 '구(9)성이 구질구질하게 애원해서'다.
말발굽에 짓밟히는 패배의 치욕을 곱씹으며 3년을 준비한 윤관의 절치부심, 그리고 피 흘려 얻은 9성을 2년 만에 돌려줄 때의 허탈함. 훗날 금이 사대를 요구해 왔을 때 고려 사람들이 느낀 굴욕감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 눈 덮인 동북 국경, 윤관이 '고려지경'이라 새긴 비석을 세우는 척경입비도의 한 장면. 뒤로는 기병·보병·승병이 세 줄로 도열해 있다. 🏔️🚩
삼별초
별무반은 여진 정벌을 위해 숙종 때 편성한 부대, 삼별초는 최우가 만든 사병 조직으로 대몽 항쟁을 이어 갔다. '별무반=여진, 삼별초=몽골'.
서희의 강동 6주
강동 6주는 거란과의 외교 담판으로 얻은 서북 지역, 동북 9성은 여진을 무력 정벌해 쌓은 동북 지역이다. 획득 방식(외교 vs 정벌)과 방향이 다르다.
광군
광군은 정종(3대) 때 거란 침입에 대비해 조직한 부대이고, 별무반은 여진에 대비한 부대다. 대비한 상대가 다르다.
고려의 북방 개척 의지를 보여 준 사건이자, 여진(금)의 성장과 고려 외교 노선 갈등(금국 정벌론)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