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3선 개헌으로도 집권 연장에 한계를 느낀 박정희는 냉전 완화(데탕트)와 국내 위기감을 명분으로 1972년 10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한 뒤 유신 헌법을 제정하였다. 유신 헌법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게 하고 임기 6년에 중임 제한을 철폐했으며, 대통령에게 국회 의원 3분의 1 추천권과 국회 해산권, 긴급 조치권까지 부여한 사실상의 영구 집권 헌법이었다.
정부는 긴급 조치를 잇달아 발동해 유신 반대 운동(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3·1 민주 구국 선언 등)을 탄압하였다. 그러나 1979년 가발 업체 YH 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다 진압되는 YH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비판한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의원직에서 제명되자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 진압 방식을 두고 정권 내부가 갈라진 가운데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하면서 18년 장기 집권과 유신 체제는 갑작스럽게 무너졌다. 유신 체제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시기로 평가된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통일 주체 국민 회의 간선제와 긴급 조치의 초헌법적 영구 집권 체제가 세워졌고, YH 사건과 부마 항쟁 끝에 10·26으로 막을 내렸다.
유신 체제
통일 주체 국민 회의 vs 대통령 선거인단
3선까지 마친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아예 선거다운 선거를 없애 버리는 유신의 길을 택했다. 체육관에 모인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들이 사실상 단일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그는 계속 대통령이 되었고, 긴급 조치 앞에서 유신을 비판하면 학생도 시인도 감옥에 갔다.
1979년, 회사 폐업에 항의하며 신민당사에 올라간 YH 무역의 어린 여공들이 강제 진압으로 끌려 나오다 김경숙이 목숨을 잃었고, 이들을 감싼 김영삼마저 국회에서 쫓겨나자 부산과 마산의 시민들이 '유신 철폐'를 외치며 일어섰다. 진압을 놓고 강경파 차지철과 갈등하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궁정동 만찬장에서 방아쇠를 당겼고, 18년 철옹성은 하룻밤에 무너졌다.
회사로 치면 오너가 주주 총회를 없애고 자신이 임명한 거수기 위원회(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만 대표를 뽑게 정관을 바꾼 뒤, 사내 비판 글만 올려도 해고하는 규정(긴급 조치)을 만든 것이다. 결국 말단 직원들의 농성(YH·부마)과 임원 내부 분열(10·26)로 회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셈이다.
유신 붕괴는 'YH→김영삼 제명→부마→10·26' 순서를 '와이(Y) 김 부장 총 맞았대'로 암기. 유신 헌법 키워드는 '통·육·긴'(통일 주체 국민 회의, 임기 6년, 긴급 조치).
유신은 '유일한 신'이 되겠다는 헌법. 통일 주체 국민 회의는 '통째로 주니 체육관 선거'. 10·26은 '십이(10·26)년도 더 간 독재, 총성 한 방에 끝'.
노래 가사 하나, 술자리 농담 하나로도 잡혀가던 시대의 숨 막힘을 상상해 보자. 그럼에도 여공들과 부산·마산 시민들이 두려움을 넘어 거리로 나섰기에 체제가 무너질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사건의 심장이다.
🏟️ 체육관에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 → 📜 벽보에 나붙은 긴급 조치 포고문 → 🏢 신민당사 앞 YH 여성 노동자들 → 🔥 부산 거리의 '유신 철폐' 함성 → 🔫 궁정동의 총성.
통일 주체 국민 회의 vs 대통령 선거인단
통일 주체 국민 회의는 유신 헌법(1972)의 간선 기구이고, 대통령 선거인단은 전두환 시기 8차 개헌(1980) 헌법의 간선 기구다. '유신=통일 주체, 5공=선거인단'으로 구분하자.
부마 민주 항쟁 vs 5·18 민주화 운동
부마 항쟁(1979)은 유신 체제 반대(부산·마산)로 10·26의 배경이 되었고, 5·18(1980)은 신군부 퇴진과 계엄 철폐를 요구한 광주의 항쟁이다. 대상 정권(박정희/신군부)으로 구분한다.
3선 개헌(1969) vs 유신 헌법(1972)
3선 개헌은 대통령의 3회 연임을 허용한 개헌이고, 유신 헌법은 아예 중임 제한 자체를 없애고 간선제로 바꾼 별개의 헌법이다. '연임 3회 허용'과 '무제한 집권'의 차이다.
10·26 사태 vs 12·12 사태
10·26(1979)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해 유신이 붕괴한 사건이고, 12·12(1979)는 전두환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한 정변이다. 같은 해 두 달 간격이므로 순서 문제에 특히 주의.
행정·입법·사법 위에 대통령이 군림하는 초헌법적 권위주의 체제로 민주주의가 전면 부정되었으나, 그 억압이 역설적으로 부마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의 저항 역량을 키워 체제 붕괴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