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흔들리자 교육과 산업으로 실력을 양성해 국권을 회복하자는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났다. 그 정점이 1907년 안창호·양기탁 등이 조직한 비밀 결사 신민회로, 공개 단체가 번번이 해산당한 교훈에서 지하 조직을 택했고 최초로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신민회는 이승훈의 오산학교(정주)와 안창호의 대성학교(평양)로 인재를 기르고, 태극서관과 자기회사로 민족 산업을 일으켰으며, 남만주 삼원보에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해 신흥강습소의 토대를 놓았으나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와해되었다. 한편 1907년 2월 대구에서 서상돈·김광제가 일본에서 강제로 떠안은 차관 1300만 원을 갚자며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하자, 남자는 담배를 끊고 여자는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는 모금이 전국으로 번졌고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 등 언론이 앞장섰다.
그러나 통감부가 주도자 양기탁을 횡령 혐의로 구속하는 등 탄압하면서 운동은 좌절되었다. 실력 양성과 경제적 자주라는 두 흐름은 이후 독립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1907년 안창호·양기탁의 비밀 결사 신민회가 오산·대성학교와 태극서관을 세워 실력을 길렀고, 대구에서는 서상돈이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다.
애국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
물산장려운동(1920년대)
미국에서 돌아온 안창호는 광장의 연설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음을 알았다. 독립협회가 몽둥이에 해산되는 것을 본 세대였기에, 그는 양기탁과 함께 간판 없는 조직 신민회를 만들고 학교와 서점과 도자기 회사 뒤에 혁명의 꿈을 숨겼다.
새로운 백성(신민)이 새로운 나라, 왕 없는 공화국을 세운다는 급진적 이상이었다. 같은 시각 대구의 거상 서상돈은 담배를 끊어 나랏빚을 갚자고 외쳤고, 기생부터 고종 황제까지 담뱃값과 가락지를 내놓았다. 총 대신 학교와 성금으로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신민회는 겉으로는 학교·출판사·회사를 운영하는 합법 스타트업들이지만 실제로는 체제 전환을 준비한 비밀 지주회사다. 국채보상운동은 나라 부채를 갚기 위한 전 국민 크라우드펀딩으로, 언론사가 모금 플랫폼 역할을 했다.
신민회는 '공·비·오·대·태·105'로 암기. 공화정, 비밀 결사, 오산학교, 대성학교, 태극서관, 105인 사건. 국채보상운동은 '1907 대구 서상돈, 담배 끊고 비녀 뽑아 대한매일신보로'.
신민회는 신(new) 민(백성)을 만드는 회사라서 학교를 세웠다. 서상돈은 나랏빚에 상심한 돈의 사나이, 담배 끊은 돈으로 국채를 갚자 했으니 이름부터 예언이었다.
빚으로 나라가 넘어간다는 소식에 아낙네는 시집올 때 받은 가락지를, 학생은 점심값을 내놓았다. 내 한 몸의 작은 정성이 모이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그 순수한 절실함이 통감부의 탄압으로 꺾일 때의 억울함까지 함께 기억해야 한다.
🏫 평양 대성학교 교정에서 체조하는 학생들과 정주 오산학교의 등불. 📚 태극 문양이 걸린 태극서관 서가. 🚬 부러뜨린 담뱃대와 💍 소반 위에 수북이 쌓인 비녀·가락지, 그 옆의 대한매일신보 모금 명단.
물산장려운동(1920년대)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해 나랏빚을 갚자는 모금 운동,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대 평양에서 조만식이 시작한 토산품 애용 운동. 대구는 국채, 평양은 물산으로 구분한다.
대한자강회
대한자강회(1906)는 합법 계몽 단체로 고종 퇴위 반대 운동을 하다 해산됐고 입헌군주제 계열, 신민회(1907)는 비밀 결사로 공화정 지향. 공화정이 보이면 무조건 신민회다.
보안회
보안회는 1904년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에 성공한 단체로, 신민회의 학교·회사 설립과는 활동 성격이 다르다. 황무지가 나오면 보안회다.
교육·산업·언론을 통한 실력 양성 노선과 전 국민적 경제 구국 운동의 출발점으로,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이후 민족 운동의 인적 토대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