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1920년

봉오동·청산리 대첩

★★★☆☆자주 출제추정 ·최근 20회 중 8회 · 3회 중 1회꼴 출제

1920년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봉오동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연합 부대가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독립 전쟁 최대의 승리.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919년의열단
  2. 1920년대문화 통치와 산미 증식 계획
  3. 1920년봉오동·청산리 대첩

    1920년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봉오동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연합 부대가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독립 전쟁 최대의 승리.

  4. 1926~1927년6·10 만세 운동과 신간회
  5. 1929년광주 학생 항일 운동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봉오동·청산리 대첩

  • ·1920년
  • ·1920년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봉오동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연합 부대가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독립 전쟁 최대의 승리.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

  • ·봉오동(6월)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중심, 청산리(10월)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가 중심이 되고 홍범도 부대가 연합했다. 인물-전투 매칭을 바꿔 내는 함정에 주의한다.
VS

스토리텔링

포수 출신 홍범도는 산길과 골짜기를 손금 보듯 알았다. 그는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 깊숙이 유인한 뒤 삼면에서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다. 넉 달 뒤, 사관 출신의 귀공자 김좌진은 청산리 백운평 계곡 위에 병력을 매복시켰다. 안개 낀 새벽, 좁은 계곡으로 들어선 일본군 위로 총탄이 쏟아졌다. 산포수의 감각과 정규 군사 교육이 만난 6일간의 혈전에서 독립군은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는 참혹했다. 일본군은 간도의 한인 마을을 통째로 불태웠고, 부대원들은 불타는 고향 마을을 뒤로한 채 얼어붙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현대 비유

객관적 전력에서 압도적 열세인 팀이 홈그라운드 지형을 완벽히 활용해 우승 후보를 연파한 대이변이다. 봉오동이 1차전, 청산리가 파이널 매치였다.

암기법

'봉홍청김' — 봉오동은 홍범도, 청산리는 김좌진. 흐름은 '봉훈청간자삼' — 봉오동, 훈춘 사건, 청산리, 간도 참변, 자유시 참변, 3부 성립 순서.

말장난 암기

봉오동에서 일본군은 '봉'변을 당했고, 청산리에서는 빚을 '청산' 당했다. 홍범도는 '홍'길동처럼 신출귀몰, 김좌진은 '좌'우로 매복 진을 쳤다.

감정 연결

나라 잃고 국경을 넘은 이들이 처음으로 맛본 통쾌한 승리의 눈물. 그러나 그 승리 뒤에 불타 버린 간도 마을들을 생각하면 승리와 비극이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장면 상상

안개 자욱한 청산리 계곡, 능선 위 독립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고 계곡 아래 일본군이 쓰러지는 장면. 백두산 자락의 시월 단풍.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

봉오동(6월)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중심, 청산리(10월)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가 중심이 되고 홍범도 부대가 연합했다. 인물-전투 매칭을 바꿔 내는 함정에 주의한다.

간도 참변과 자유시 참변

간도 참변(1920)은 일본군이 만주 한인을 학살한 사건, 자유시 참변(1921)은 러시아령에서 독립군이 희생된 사건이다. 가해 주체와 장소가 다르다.

쌍성보·대전자령 전투(1930년대)

지청천의 한국독립군과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이 벌인 한중 연합 작전은 1930년대다. 1920년의 봉오동·청산리와 시기를 구분한다.

관련 인물
홍범도김좌진최진동안무서일
관련 문화재·유물
봉오동 전적지청산리 전적지북로군정서 사진
독립군의 조직적 무장 투쟁이 정규 일본군을 이길 수 있음을 증명한 독립 전쟁의 금자탑이다. 참변의 시련 속에서도 무장 투쟁의 명맥은 3부와 이후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