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1920년대

문화 통치와 산미 증식 계획

👑 사이토 마코토(총독)★★★☆☆자주 출제추정 ·최근 20회 중 9회 · 3회 중 1회꼴 출제

3·1 운동에 놀란 일제가 보통 경찰 전환 등 유화책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민족 분열책이었고,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을 수탈한 1920년대 통치.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919년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2. 1919년의열단
  3. 1920년대문화 통치와 산미 증식 계획

    3·1 운동에 놀란 일제가 보통 경찰 전환 등 유화책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민족 분열책이었고,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을 수탈한 1920년대 통치.

  4. 1920년봉오동·청산리 대첩
  5. 1926~1927년6·10 만세 운동과 신간회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문화 통치와 산미 증식 계획

  • ·1920년대
  • ·3·1 운동에 놀란 일제가 보통 경찰 전환 등 유화책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민족 분열책이었고,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을 수탈한 1920년대 통치.

헌병 경찰제(1910년대)

  • ·헌병 경찰·태형은 1910년대 무단 통치, 보통 경찰·치안유지법은 1920년대 문화 통치. 경찰의 종류로 시기를 판별한다.
VS

스토리텔링

새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부임하며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을 약속했다. 신문사가 생기고 헌병 대신 양복 입은 경찰이 거리에 섰다. 그러나 사이토의 책상 서랍에는 '친일 인물을 길러 민족 운동을 분열시킨다'는 통치 방침이 들어 있었다. 신문 기자들은 아침에 쓴 기사가 저녁에 삭제되는 것을 지켜봤고, 1925년부터는 치안유지법으로 사상까지 처벌받았다. 그 사이 군산항에는 일본으로 실려 갈 쌀가마가 산처럼 쌓였고, 쌀을 기른 농민들은 만주산 조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현대 비유

회사가 '수평적 문화로 바꾸겠다'며 복장 자유화를 발표해 놓고 실제로는 감시 카메라를 두 배로 늘리고 사내 게시판 글을 검열하는 것과 같다. 간판만 바꾼 위장 개편이다.

암기법

문화 통치의 기만 3종은 '문경신' — 문관 총독(임명 0명), 경찰 전환(수는 증가), 신문 허용(검열·정간). 경제는 '산미 증식 = 증산 미달, 수탈 초과'로 암기. 치안유지법은 '이(2)렇게 오(5)래 괴롭히나' 1925년.

말장난 암기

문화 통치는 '문'만 열어 준 척한 '화'나는 통치. 산미 증식 계획은 쌀(米)이 산처럼 쌓여 일본으로 가서, 정작 조선 밥상에서는 쌀이 '증발'한 계획이다.

감정 연결

겉으로는 부드러워진 듯했지만 감시는 더 촘촘해진 시대. 뼈 빠지게 농사지은 쌀을 항구로 실어 보내고 잡곡죽을 먹던 농민의 허탈함이 이 시기의 진짜 얼굴이다.

장면 상상

웃는 가면을 쓴 총독 뒤로 두 배로 늘어난 경찰 행렬, 군산항에 쌓인 쌀가마 산과 그 앞에서 조밥을 먹는 농민 가족.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헌병 경찰제(1910년대)

헌병 경찰·태형은 1910년대 무단 통치, 보통 경찰·치안유지법은 1920년대 문화 통치. 경찰의 종류로 시기를 판별한다.

토지 조사 사업(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은 소유권 정리를 빙자한 토지 수탈, 산미 증식 계획은 증산을 빙자한 쌀 수탈. '땅은 10년대, 쌀은 20년대'로 구분한다.

국가총동원법(1938)

치안유지법(1925)은 사상 탄압법, 국가총동원법(1938)은 인적·물적 자원 수탈법으로 민족 말살 통치기의 법이다.

관련 인물
사이토 마코토
관련 문화재·유물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호군산항 뜬다리 부두치안유지법 문서
친일파 양성을 통한 민족 분열 통치의 원형으로, 이때 길러진 친일 세력이 이후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산미 증식 계획은 식민지 조선을 일본의 식량 공급 기지로 재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