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919년 김원봉이 조직하고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을 지침으로 삼아 김익상·김상옥·나석주 의거를 일으킨 항일 의열 투쟁 단체.
1919년 김원봉이 조직하고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을 지침으로 삼아 김익상·김상옥·나석주 의거를 일으킨 항일 의열 투쟁 단체.
의열단
한인 애국단(1931, 김구)
스물한 살 김원봉은 3·1 운동의 만세 소리가 총칼 앞에 스러지는 것을 보며 결심했다. 말이 아니라 폭탄으로 답하겠다고. 지린의 허름한 집에 모인 13인의 청년들은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뜻의 의열단을 만들었다. 단원들은 늘 마지막 사진을 찍듯 최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임무에 나섰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원봉은 사상적 무기가 필요하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 신채호를 찾아갔고, 그렇게 탄생한 조선혁명선언은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라고 선포했다. 일제가 김원봉에게 건 현상금은 김구보다 높았다.
거대 조직과 정면 대결이 불가능할 때 핵심 시설만 정밀 타격하는 특수부대 전략이다. 조선혁명선언은 이 팀의 미션 선언문이자 행동 강령이었던 셈이다.
의열단 의거는 '익총, 상종, 나동' — 김익상은 총독부, 김상옥은 종로경찰서,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침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단장은 김원봉.
의열단의 '의'리는 폭탄급, '열'정은 활화산급. 나석주는 '나 석유 아니고 폭탄이오' 하며 동척으로, 김상옥은 종로에서 '상옥(옥상)' 넘나들며 총격전을 벌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스스로 선택한 청년들. 마지막이 될지 모를 아침마다 가장 좋은 옷을 입던 그들의 비장함이 의열단의 정신이다.
말끔한 양복에 중절모를 쓴 청년이 품속 폭탄을 감춘 채 총독부 계단을 오르는 장면, 그 뒤로 펄럭이는 조선혁명선언 문서. 💣🕴️📜
한인 애국단(1931, 김구)
의열단은 1919년 김원봉이 만주에서, 한인 애국단은 1931년 김구가 상하이에서 조직했다. 김익상·김상옥·나석주는 의열단, 이봉창·윤봉길은 한인 애국단이다.
기미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는 3·1 운동의 선언문, 조선혁명선언(1923)은 신채호가 쓴 의열단 활동 지침이다. 민중 직접 혁명이 나오면 조선혁명선언이다.
강우규 의거(1919)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는 의열단원이 아니라 노인동맹단 소속이다. 의열단 창단 직전의 별개 의거다.
개인 의열 투쟁으로 일제 통치 기관에 직접 타격을 가해 무장 투쟁의 불씨를 이어갔다. 조선혁명선언은 민중 중심 혁명론을 제시한 독립운동 사상사의 명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