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1927년
1926년 순종 인산일의 6·10 만세 운동이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이어져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연합한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1926년 순종 인산일의 6·10 만세 운동이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이어져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연합한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6·10 만세 운동과 신간회
3·1 운동(1919)
순종의 상여가 지나가던 1926년 6월 10일, 중앙고보 학생 이선호는 군중 속에서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외쳤다. 지도부가 모두 잡혀간 뒤였지만 학생들은 멈추지 않았다. 감옥에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한 방을 쓰며 깨달았다. 갈라져 싸우는 동안 웃는 것은 일제뿐이라는 것을. 이듬해 백발의 원로 이상재가 회장을 맡은 신간회 창립 대회장에는 지주의 아들과 소작농, 기독교인과 사회주의자가 나란히 앉았다. 타협적 자치론자들을 향해 그들은 한목소리로 선언했다.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배격한다.'
노선이 전혀 다른 두 야당이 거대 여당 견제를 위해 연합 정당을 만든 것과 같다. 정책 이념은 달라도 '반일'이라는 단일 목표로 뭉친 연합 플랫폼이 신간회다.
'육순신기근' — 6·10 만세는 순종 인산일, 신간회는 기회주의 배격, 자매단체는 근우회. 흐름은 '육십 넘어 정신 차려' — 6·10 만세 → 정우회 선언 → 신간회.
신간회는 '신간(새 책)'처럼 민족 운동의 새 페이지를 연 단체. 좌우가 '신기하게' 한 회사에 모였다고 외워라. 근우회는 '근'사한 '우'리 여성들의 모임.
서로를 불신하던 좌와 우가 순종의 장례 행렬 앞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손을 잡은 순간. 분열의 대가를 뼈저리게 안 사람들의 절박한 단결이었다.
순종의 상여 행렬 사이로 흩날리는 격문, 그 위로 겹쳐지는 신간회 창립 대회장의 좌우 합작 악수 장면. 🤝📜🏛️
3·1 운동(1919)
3·1 운동은 고종 승하 무렵, 6·10 만세 운동은 순종 인산일이 계기다. '고종=3·1, 순종=6·10' 공식으로 구분한다.
물산 장려 운동(1920년대 초)
물산 장려 운동은 '조선 사람 조선 것'을 내건 실력 양성 운동이고, 신간회는 좌우 합작 정치 결사다. 경제 자강이냐 협동 전선이냐로 구분한다.
신민회(1907)
신민회는 1907년 비밀 결사로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고, 신간회는 1927년 합법 단체로 1931년 해소되었다. 이름이 비슷해 자주 바꿔 출제된다.
이념을 초월한 민족 협동 전선의 결실로, 좌우 합작 운동의 역사적 원형이 되었다. 합법 공간에서 전국 조직을 갖추고 민족 운동을 지도한 유일한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