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알아두기추정 ·최근 20회 중 5회 · 가끔 출제

1920년대 학교 현장에서는 식민지 차별 교육에 맞선 동맹 휴학이 이어지며 학생 운동 역량이 축적되고 있었다. 1929년 10월 나주역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 박기옥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하자 한일 학생 간 충돌이 벌어졌는데, 일본 경찰과 언론이 일방적으로 일본 학생을 편들면서 광주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11월 3일 광주 학생들은 '식민지 차별 교육 철폐'와 '일제 타도'를 외치며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였다. 신간회는 즉시 조사단을 파견하고 이를 전국적 항일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민중 대회를 계획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시위는 이듬해까지 전국 320여 개 학교, 5만 4천여 명이 참여하는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날을 기려 11월 3일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왕→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920년봉오동·청산리 대첩
  2. 1926~1927년6·10 만세 운동과 신간회
  3. 1929년광주 학생 항일 운동

    1929년 나주역 한일 학생 충돌에서 비롯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

  4. 1930년대 이후민족 말살 통치
  5. 1931년한인 애국단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1929년
  • ·1929년 나주역 한일 학생 충돌에서 비롯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

6·10 만세 운동(1926)

  • ·6·10 만세 운동은 순종 인산일이 계기,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나주역 한일 학생 충돌이 계기다. 순서는 6·10(1926)이 먼저, 광주(1929)가 나중이다.
VS

스토리텔링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 통학 열차에서 내리던 여학생 박기옥의 댕기 머리를 일본인 학생 후쿠다가 잡아당기며 조롱했다. 이를 본 사촌 동생 박준채의 주먹이 먼저 나갔다.

경찰서로 끌려간 것은 그러나 한국 학생들이었고, 신문은 한국 학생들을 폭도로 몰았다. 매일같이 차별을 삼켜 온 광주의 학생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11월 3일, 그들은 책가방 대신 격문을 들고 교문을 나섰다. '우리의 울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광주에서 타오른 불길은 겨울 내내 전국의 교정으로 번져 갔다.

현대 비유

한 학교의 차별 사건 영상이 공유되며 전국 학생들의 동시다발 시위로 번진 상황과 같다. 축적된 차별의 분노가 하나의 사건을 도화선으로 폭발한 것이다.

암기법

'이구(29) 광주 학생'으로 1929년을 암기. 특징 3종 세트는 '나신최' — 나주역 발단, 신간회 조사단, 최대 규모(3·1 이후).

말장난 암기

광주 학생 운동은 '광'범위하게 '주'욱 퍼진 학생 운동. 나주역에서 '나 주먹 나간다'로 시작됐다고 외워라.

감정 연결

매일 열차 안에서 참아 온 모욕이 임계점을 넘은 순간. 교복 입은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교문을 나선 것은 그것이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장면 상상

나주역 플랫폼의 통학 열차, 댕기 머리 여학생, 그리고 교복 차림으로 격문을 들고 거리를 메운 학생들의 행렬.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6·10 만세 운동(1926)

6·10 만세 운동은 순종 인산일이 계기,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나주역 한일 학생 충돌이 계기다. 순서는 6·10(1926)이 먼저, 광주(1929)가 나중이다.

3·1 운동(1919)

'최대 규모'는 3·1 운동,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다. 수식어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관련 인물
박기옥박준채장재성
관련 문화재·유물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나주역사(구 나주역)광주고보 터
학생이 민족 운동의 당당한 주역임을 보여 준 사건으로, 항일 운동의 저변을 전국 청년층으로 넓혔다. 신간회 활동과 맞물려 1920년대 민족 협동 전선의 실천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