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1930년대 이후

민족 말살 통치

👑 미나미 지로(총독)★★★☆☆자주 출제추정 ·최근 20회 중 9회 · 3회 중 1회꼴 출제

1930년대 이후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세워 황국신민서사·창씨개명·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국가총동원법으로 인적·물적 자원까지 수탈한 통치.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926~1927년6·10 만세 운동과 신간회
  2. 1929년광주 학생 항일 운동
  3. 1930년대 이후민족 말살 통치

    1930년대 이후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세워 황국신민서사·창씨개명·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국가총동원법으로 인적·물적 자원까지 수탈한 통치.

  4. 1931년한인 애국단
  5. 1938년·1940년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민족 말살 통치

  • ·1930년대 이후
  • ·1930년대 이후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세워 황국신민서사·창씨개명·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국가총동원법으로 인적·물적 자원까지 수탈한 통치.

무단 통치(1910년대)·문화 통치(1920년대)

  • ·태형·헌병 경찰은 1910년대, 보통 경찰·치안유지법은 1920년대, 황국신민서사·창씨개명·공출은 1930년대 이후다. 키워드로 3개 시기를 판별한다.
VS

스토리텔링

1940년 봄, 시골 훈장 최 노인은 면사무소에 불려 갔다.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창씨를 거부하면 자식의 학교 입학과 식량 배급이 막힌다는 협박 앞에 노인은 붓을 들고 오열했다. 조상의 성을 제 손으로 지우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손자는 조선말을 쓰다 벌을 받았고, 아침마다 뜻도 모르는 황국신민서사를 외웠다. 마을 신사 앞에 억지로 고개를 숙이며 아이는 물었다. '할아버지, 우리는 누구예요?' 일제가 지우려 한 것은 바로 그 물음의 답이었다.

현대 비유

회사가 인수한 브랜드의 이름·로고·역사를 전부 지우고 자사 브랜드로 강제 통합하는 것과 같다. 다만 그 대상이 상품이 아니라 한 민족의 이름과 언어, 정체성 전체였다.

암기법

말살 통치 4대 강요는 '내황창신' — 내선일체, 황국신민서사, 창씨개명, 신사참배. 국가총동원법은 '삼팔(38)선 넘어 다 끌고 간다' 1938년으로 암기.

말장난 암기

내선일체는 '내 선(조상) 일부러 체(체면)도 버리라'는 강요. 창씨개명은 '창피하게 씨(성)를 개(고쳐) 명(이름)까지' 바꾸라는 것.

감정 연결

이름을 빼앗기는 것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일이다. 조상의 성을 지우며 흘린 눈물, 모국어를 쓰다 매를 맞은 아이들의 상처를 기억할 때 이 시기의 무게가 온전히 다가온다.

장면 상상

신사 계단 아래 고개 숙인 행렬, 창씨개명 신고서 위에 떨어지는 눈물, 공출로 숟가락까지 실려 나가는 달구지.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무단 통치(1910년대)·문화 통치(1920년대)

태형·헌병 경찰은 1910년대, 보통 경찰·치안유지법은 1920년대, 황국신민서사·창씨개명·공출은 1930년대 이후다. 키워드로 3개 시기를 판별한다.

치안유지법(1925)

치안유지법은 문화 통치기의 사상 탄압법이고, 국가총동원법(1938)은 민족 말살 통치기의 총동원 수탈법이다. 연도와 목적이 다르다.

산미 증식 계획(1920년대)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 증산을 빙자한 쌀 반출, 공출은 1930년대 후반 이후 전쟁 물자의 강제 징발이다. 배급제가 함께 나오면 공출이다.

관련 인물
미나미 지로최현배이윤재
관련 문화재·유물
황국신민서사비조선신궁 터국가총동원법 문서
언어와 이름, 역사까지 지우려 한 민족 말살 정책은 식민 지배의 가장 폭력적인 본질을 드러냈다. 강제 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과거사 청산의 핵심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