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188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켜 14개조 정강을 발표했으나 청군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났다.
188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켜 14개조 정강을 발표했으나 청군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났다.
갑신정변
14개조 정강 vs 홍범 14조
33세의 김옥균은 일본의 눈부신 변화를 두 눈으로 보고 온 뒤 조바심에 사로잡혔다. '청의 속박 아래서는 조선에 미래가 없다. 우리도 메이지 유신처럼 단숨에 바꿔야 한다.' 우정총국 축하연의 불길을 신호로 그는 역사의 주사위를 던졌다. 새 정부의 개혁안을 밤새워 써 내려가던 사흘, 그러나 믿었던 일본군은 청군이 몰려오자 등을 돌렸다. 인천으로 도망치는 배 위에서 그가 곱씹은 것은 '남의 힘을 빌린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라는 잔인한 진실이었다. 10년 뒤 그는 상하이에서 자객 홍종우의 총에 생을 마감한다.
유학파 젊은 임원들이 구조 조정(청프 전쟁)으로 대주주(청)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신사옥 개관식(우정총국 축하연) 날 이사회를 급습해 경영권을 잡고 혁신 로드맵(14개조 정강)을 발표한 격이다. 그러나 투자를 약속했던 외부 파트너(일본)가 발을 빼면서 3일 만에 대주주 측에 진압당한 쿠데타였다.
갑신정변 핵심은 '우·14·3·톈' — 우정총국 발단, 14개조 정강, 3일 천하, 톈진 조약. 정강 내용은 '사대 청산·인민 평등·지조법·혜상공국 폐지'로 묶어 암기.
'갑'자기 '신'식으로 바꾸려다 3일 만에 끝난 '갑신'정변. 김옥균은 '옥균(옥 같은 균형)'을 꿈꿨지만 일본이라는 저울추가 빠지자 균형이 무너졌다고 기억하자.
세상을 바꾸겠다는 청년들의 사흘간의 꿈은 뜨거웠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일본과 손잡은 역적'으로 보았다. 개혁의 내용은 옳았으나 방법이 민심을 얻지 못했을 때의 비극, 그 안타까움이 갑신정변을 기억하게 하는 힘이다.
🏤 축하연이 열리던 우정총국에 치솟는 불길, 🗡️ 사흘 밤낮 그려진 새 나라의 설계도 14개조, 🏃 인천항으로 달아나는 개화파 청년들, 🌊 상하이에서 스러진 김옥균의 마지막.
14개조 정강 vs 홍범 14조
14개조 정강은 '갑신정변(1884)' 때 급진 개화파의 개혁안이고, 홍범 14조는 '갑오개혁 2차(1895)' 때 고종이 반포한 국정 개혁 강령이다. 숫자 14가 같아 최다 빈출 함정이다.
한성 조약 vs 톈진 조약
한성 조약은 '조선-일본' 간 배상 조약이고, 톈진 조약은 '청-일본' 간 철군·파병 통보 조약이다. 조선이 당사자인지 아닌지로 구분하면 쉽다.
온건 개화파 vs 급진 개화파
온건 개화파(김홍집·김윤식)는 청의 양무운동식 동도서기, 급진 개화파(김옥균·박영효)는 일본 메이지 유신식 문명개화(변법)를 모델로 했다. 모델 국가로 구분하자.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한 최초의 위로부터의 정치 개혁 운동으로, 이후 갑오개혁과 독립 협회 활동으로 이어지는 근대화 운동의 선구가 되었으나 외세 의존이라는 뼈아픈 교훈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