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6년
공민왕은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무력 수복했으며, 정방을 폐지하고 신돈의 전민변정도감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공민왕은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무력 수복했으며, 정방을 폐지하고 신돈의 전민변정도감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공민왕의 반원 자주 개혁
광종의 노비안검법
원의 수도에서 볼모로 자란 소년은 제국의 화려함 뒤에 드리운 황혼을 보았다. 왕이 되어 고려로 돌아온 공민왕은 사랑하는 노국대장공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변발을 풀어 버리는 것으로 개혁의 신호탄을 쏘았다. 기철을 단칼에 제거하고 100년간 빼앗겼던 철령 이북을 되찾은 그는, 천민 출신 승려 신돈에게 개혁의 칼을 쥐여 주었다. 권문세족의 농장이 해체되고 노비들이 풀려나자 백성들은 성인이 나타났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공주의 죽음이 왕의 영혼을 무너뜨렸고, 신돈은 숙청되고 왕은 시해당했다. 미완의 개혁이었지만 그가 키운 성균관의 젊은 유학자들이 새 시대의 문을 열게 된다.
모기업(원)이 기울자 자회사 사장(공민왕)이 본사 파견 임원(기철)을 해임하고 빼앗겼던 사업부(쌍성총관부)를 되찾은 경영권 회복 드라마다. 외부 영입 개혁 전문가(신돈)가 부패 임원들의 횡령 자산을 환수(전민변정도감)하고, 사내 교육원(성균관)에서 차세대 인재를 길러 낸 것까지 닮았다.
공민왕 개혁은 '기쌍정전성'. 기철 제거, 쌍성총관부 수복, 정방 폐지, 전민변정도감, 성균관 개편. '기가 막힌 쌍둥이가 정말 전부 성공했다'로 외우자.
전민변정도감은 '전'답과 '민'(노비)을 '변'호해 바로잡는('정') 기구다. 신돈은 '신'나게 '돈'(권문세족 재산)을 되돌려 준 개혁가로 기억하자. 쌍성총관부 수복 1356년은 '일삼오륙, 한번에 삼키고 오래된 땅 육지로 회복'.
100년 묵은 굴욕을 씻어 내는 통쾌함이 개혁의 동력이었다. 땅과 자유를 되찾은 백성들은 신돈을 성인이라 불렀지만, 기득권의 반격 앞에 개혁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좌절도 컸다. 희망과 비극이 교차한 개혁이었다.
✂️ 거울 앞에서 변발을 자르는 공민왕, 지도에서 쌍성총관부 자리에 고려 깃발이 꽂히고, 관청 앞에서는 노비 문서를 돌려받은 백성들이 절하는 장면. 🗺️🚩📜
광종의 노비안검법
노비안검법(광종)은 고려 초 호족의 불법 노비 해방, 전민변정도감(공민왕·신돈)은 고려 말 권문세족의 토지·노비 환원이다. 견제 대상(호족 vs 권문세족)과 시기로 구분한다.
쌍성총관부와 동녕부
공민왕이 1356년 무력으로 수복한 것은 쌍성총관부(철령 이북)다. 동녕부(서경)와 탐라총관부는 그보다 앞선 충렬왕 대에 반환되었다. '무력 수복=쌍성총관부'만 기억하면 된다.
조선의 성균관
공민왕의 성균관 개편은 고려 국자감 계통 학교를 유학 전문 기관으로 재편한 것이고, 조선 성균관은 이를 계승한 한양의 최고 학부다. 시대 판별 문제에서 혼동하기 쉽다.
원 간섭 체제를 무너뜨려 자주성을 회복하고 개혁 정치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신진 사대부 성장의 토대를 놓아 고려 말 대개혁과 조선 건국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