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0년
원 간섭기 고려는 정동행성과 쌍성총관부 등을 통해 내정을 간섭받았고, 권문세족이 성장했으며 몽골풍이 유행하고 공녀가 끌려갔다.
원 간섭기 고려는 정동행성과 쌍성총관부 등을 통해 내정을 간섭받았고, 권문세족이 성장했으며 몽골풍이 유행하고 공녀가 끌려갔다.
원 간섭기의 고려
정동행성과 쌍성총관부
고려의 세자는 원의 수도에서 인질로 자라 몽골 공주와 혼인한 뒤에야 왕이 될 수 있었다. 왕관을 쓰고도 변발을 한 왕, 이것이 원 간섭기의 초상이다. 원의 힘을 등에 업은 권문세족들은 남의 땅을 빼앗아 산과 강을 경계로 삼는 거대한 농장을 만들었고, 힘없는 백성들은 그 농장의 노비로 전락했다. 딸을 가진 부모들은 공녀 징발을 피하려고 어린 나이에 서둘러 혼인시켰다. 나라는 있지만 나라답지 못했던 시대, 그 굴욕의 기억이 훗날 공민왕의 칼끝에 실리게 된다.
대기업(원)에 인수는 면했지만 경영권을 사실상 뺏긴 자회사 신세다. 본사 파견 감사팀(정동행성)이 상주하고, 핵심 사업부 세 곳(쌍성총관부·동녕부·탐라총관부)은 본사 직영으로 넘어갔으며, 본사 라인을 잡은 임원들(권문세족)만 승승장구하고 사내엔 본사 유행(몽골풍)이 퍼진 상황이다.
원의 지배 기구는 '정쌍동탐'. 정동행성(내정 간섭), 쌍성총관부(화주·철령 이북), 동녕부(서경), 탐라총관부(제주). '정한 쌍둥이가 동네를 탐낸다'로 외우자.
정동행성은 '정'말 '동'쪽(일본) 정벌하러 만든 '행성'급 간섭 기구다. 충렬왕·충선왕의 '충'은 원에 '충성'하라는 낙인. 공녀는 '공짜로 데려간 여인'이라는 뼈아픈 말로 기억하자.
공녀로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통곡, 변발을 강요당하는 선비의 수치심, 권문세족의 농장에 땅을 빼앗긴 농민의 한숨이 겹친 시대였다. 그래도 고려라는 이름을 지켰다는 안도와 언젠가 되찾겠다는 다짐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 개경 거리, 변발에 호복을 입은 관리들이 몽골식 안장을 얹은 말을 타고 지나가고, 한켠에서는 공녀로 떠나는 딸과 부모가 오열하며 이별하는 장면. 원의 깃발이 정동행성 관청에 걸려 있다. 😢🏯
정동행성과 쌍성총관부
정동행성은 일본 원정용으로 설치 후 내정 간섭 기구로 남은 관청, 쌍성총관부는 철령 이북 화주 지역을 직접 지배한 통치 기구다. '간섭은 정동행성, 영토 지배는 쌍성총관부'.
권문세족과 신진 사대부
권문세족은 친원·음서·대농장 기반의 보수 세력,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과거·중소 지주 기반의 개혁 세력이다. 출세 경로(음서 vs 과거)로 구분한다.
몽골풍과 고려양
몽골풍은 고려에 퍼진 몽골 풍습(변발·호복·소주), 고려양은 원에 퍼진 고려 풍습이다. 유행의 방향이 반대다.
자주성이 크게 훼손된 시기였으나 고려는 국체를 보존했고, 이 시기의 모순과 폐단이 공민왕의 개혁과 신진 사대부 성장이라는 변화의 토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