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
1270년 개경 환도에 반발한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로 강화도에서 진도로, 김통정의 지휘로 제주도로 옮기며 1273년까지 대몽 항쟁을 이어 갔다.
1270년 개경 환도에 반발한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로 강화도에서 진도로, 김통정의 지휘로 제주도로 옮기며 1273년까지 대몽 항쟁을 이어 갔다.
삼별초의 항쟁
별무반
40년을 몽골과 싸워 온 삼별초 병사들에게 개경 환도는 곧 항복 선언이었다. 어제까지 함께 싸우자던 조정이 칼을 내려놓으라 하자, 배중손은 강화도 나루에 배를 모으고 새 왕을 세우며 외쳤다. 몽골에 무릎 꿇는 조정은 더 이상 우리의 조정이 아니라고. 진도에서 그는 남해 바다를 호령했지만 여몽 연합군의 화살에 쓰러졌고, 살아남은 김통정은 더 먼 바다 제주로 건너갔다. 육지 끝에서 섬으로, 섬에서 더 먼 섬으로. 물러설수록 결기는 단단해졌지만, 마지막 항파두리성이 무너지며 고려의 마지막 저항도 잠들었다.
본사가 적대적 인수에 합의하자 이를 거부한 강경파 직원들이 회사를 나와 독자 법인을 세우고, 거점을 옮겨 가며 3년간 버틴 격이다. 근거지를 진도에서 제주로 옮긴 것은 스타트업이 마지막 자금으로 최후의 거점을 사수한 것과 같다.
이동 경로는 '강진제', 지도자는 '배김'. 강화도(배중손)→진도(배중손 전사)→제주도(김통정). '강진 여행 가서 제주 배 타고 김 먹기'로 외우자.
배중손은 '배'를 타고 진도로 간 지휘관, 김통정은 제주 바다를 '통'째로 지키려던 '정'예 대장이다. 삼별초는 '삼(3)년간 별나게 초강경 항쟁'한 부대로 기억하자.
국가가 항복해도 나는 항복하지 않겠다는 결기, 그리고 돌아갈 곳이 사라진 자들의 비장함이 항쟁의 동력이었다. 남해안 백성들 중에는 몽골에 짓밟힌 원한으로 삼별초에 호응한 이들도 많았다. 마지막 섬에서 스러진 이들의 이야기는 패배로 끝났지만 저항의 기억으로 남았다.
⛵ 강화도를 떠나는 수백 척의 배, 진도 용장성의 깃발, 그리고 제주 항파두리 토성 위에서 수평선의 여몽 연합군 함대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뒷모습. 🏝️🚩
별무반
삼별초(좌·우별초, 신의군)는 최우가 만든 무신 정권 사병으로 몽골에 항쟁했고, 별무반(신기·신보·항마군)은 윤관이 여진 정벌을 위해 편성했다. 구성 부대 이름을 섞어 내는 오답에 주의.
배중손과 김통정
배중손은 강화도~진도 시기 지도자(진도에서 전사), 김통정은 제주도 시기 지도자다. '진도까지 배, 제주부터 김'으로 구분한다.
처인성 전투
처인성 전투(1232)는 몽골 침입기 김윤후와 부곡민의 승리이고, 삼별초 항쟁(1270~1273)은 강화 이후의 저항이다. 시기가 다르다(전쟁 중 vs 강화 후).
정부의 항복 이후에도 3년간 이어진 저항으로 고려인의 대몽 항쟁 의식을 상징하며, 진도·제주로 이어진 항쟁은 민족 저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