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 고종★★★☆☆자주 출제추정 ·최근 20회 중 9회 · 3회 중 1회꼴 출제

아관파천 이후 열강의 이권 침탈이 극심해지자,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은 1896년 독립협회를 조직했다. 협회는 청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 부근에 독립문을 세워 자주 독립 의지를 상징으로 보여주었다.

1898년 종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민중 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어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하고 한러은행을 폐쇄시켰다. 같은 해 정부 대신들도 참여한 관민공동회에서는 헌의 6조를 결의해 황제에게 재가받았고, 중추원 관제 개편을 통한 의회 설립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독립협회가 공화정을 세우려 한다는 모함이 퍼지자 고종은 보수 단체 황국협회의 보부상을 동원해 만민공동회를 습격하게 하고 협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근대적 민권 운동의 출발점이었으나 전제 황권과 충돌하며 좌절된 것이다.

시험장 인출 순서연도→왕→사건→키워드→함정

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897년대한제국 선포와 광무개혁
  2. 1898년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서재필 등이 세운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건립하고 만민공동회·관민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결의했으나 황국협회를 동원한 탄압으로 해산됐다.

  3. 1905년을사늑약
  4. 1907년애국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
  5. 1908년항일 의병 운동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 ·1898년
  • ·서재필 등이 세운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건립하고 만민공동회·관민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결의했으나 황국협회를 동원한 탄압으로 해산됐다.

보안회

  • ·보안회는 1904년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해 철회시킨 단체. 러시아 절영도 조차 저지는 독립협회, 일본 황무지 개간권 반대는 보안회로 나라와 이권을 짝지어 구분한다.
VS

스토리텔링

갑신정변 실패로 미국에 망명했던 서재필은 의사가 되어 돌아왔지만, 조국이 열강의 먹잇감이 된 현실에 다시 펜을 들었다. 그는 백성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며 한글 독립신문을 만들고, 청나라 사신에게 절하던 영은문을 헐어낸 자리 곁에 독립문을 세웠다.

종로 거리에서는 백정 출신 박성춘이 연단에 올라 관료들과 나란히 나라의 앞날을 토론했다. 그러나 황제 자리를 위협한다는 모함 앞에서, 고종은 개혁 동지가 아니라 보부상의 몽둥이를 선택했다.

현대 비유

시민들이 광장 집회와 온라인 청원으로 정부 정책을 바꾸고 국회 설립까지 요구한 셈이다. 만민공동회는 촛불 집회, 헌의 6조는 국민 청원 합의문, 황국협회의 습격은 관제 데모를 동원한 여론 탄압에 해당한다.

암기법

독립협회 활동은 '문·신·만·헌·중'으로 암기. 독립문, 독립신문, 만민공동회, 헌의 6조, 중추원 개편. 몰락 원인은 황국협회의 황(黃)이 누런 몽둥이라고 연상.

말장난 암기

만민공동회에서 만 명의 민이 공동으로 회의하니 만민공동회. 헌의 6조는 황제께 여섯 가지를 헌(바친)의견이라 헌의 6조. 황국협회는 황제의 나라를 지킨다며 협회를 때려잡은 협회다.

감정 연결

백정도 상인도 학생도 처음으로 나랏일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벅참을 느꼈다. 그러나 몽둥이에 짓밟힌 광장을 보며 민중은 위에서 내려오는 개혁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장면 상상

🏛️ 프랑스 개선문을 닮은 하얀 독립문, 그 앞 종로 광장에 갓 쓴 상인과 학생 수만 명이 모인 만민공동회. 📢 연단에 오른 백정 박성춘. 🪵 몽둥이를 든 보부상 무리가 광장으로 몰려오는 어두운 결말.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보안회

보안회는 1904년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해 철회시킨 단체. 러시아 절영도 조차 저지는 독립협회, 일본 황무지 개간권 반대는 보안회로 나라와 이권을 짝지어 구분한다.

신민회

독립협회는 합법 단체로 입헌군주제 지향, 신민회(1907)는 비밀 결사로 공화정 지향. 정치 체제 지향이 다르다는 것이 최고 빈출 함정이다.

독립문의 위치

독립문은 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헌 자리 부근에 건립했고, 모화관은 독립관으로 고쳐 사용했다. 일본과는 무관하다는 점에 주의한다.

관련 인물
서재필윤치호이상재박성춘
관련 문화재·유물
독립문독립신문독립관
민중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한 최초의 근대적 민권 운동이자 의회 설립을 시도한 선구적 사건으로, 이후 애국계몽운동으로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