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8세기 후반

실학의 발달

👑 영조·정조 시기★★★★☆매우 중요추정 ·최근 20회 중 11회 · 2회 중 1회꼴 출제

중농학파는 유형원(균전론)·이익(한전론)·정약용(여전론)의 토지 개혁, 중상학파는 유수원·박지원·박제가(북학의)의 상공업 진흥과 청 문물 수용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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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시대 흐름 속 이 사건의 자리

  1. 1724년영조의 탕평 정치와 균역법
  2. 1776년정조의 개혁 정치
  3. 18세기 후반실학의 발달

    중농학파는 유형원(균전론)·이익(한전론)·정약용(여전론)의 토지 개혁, 중상학파는 유수원·박지원·박제가(북학의)의 상공업 진흥과 청 문물 수용을 주장했다.

  4. 1800년세도 정치
  5. 1811년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 봉기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

실학의 발달

  • ·18세기 후반
  • ·중농학파는 유형원(균전론)·이익(한전론)·정약용(여전론)의 토지 개혁, 중상학파는 유수원·박지원·박제가(북학의)의 상공업 진흥과 청 문물 수용을 주장했다.

중농학파 vs 중상학파

  • ·중농은 토지 개혁(경세치용, 주로 경기 남인), 중상은 상공업·청 문물(이용후생, 주로 서울 노론). 해결 처방의 방향이 다르다.
VS

스토리텔링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화성을 설계한 엘리트였지만, 정조 사후 천주교 신자로 몰려 18년 유배살이를 한다. 강진의 초당에서 그는 좌절 대신 붓을 들어 지방관의 매뉴얼 『목민심서』와 국가 개혁안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을 써 내려갔다. 한편 서울의 박지원은 청나라 여행에서 본 벽돌집과 수레에 충격받아 『열하일기』를 썼고, 그의 제자 박제가는 '재물은 우물과 같아 퍼 써야 다시 차오른다'며 소비 진작을 외쳤다. 굶는 농민을 살리려는 남인 유배객들과, 청의 문물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는 서울 양반들, 두 갈래 길이 모두 '백성을 잘살게 하자'는 한 곳을 향했다.

현대 비유

중농학파는 '부동산 개혁으로 분배를 바로잡자'는 개혁 경제학자들, 중상학파는 '선진국 기술 도입과 내수 소비 진작으로 파이를 키우자'는 성장 경제학자들이다. 박제가의 우물 비유는 '소비가 생산을 견인한다'는 유효수요 이론의 조선판이다.

암기법

중농은 '유균-이한-정여'(유형원 균전, 이익 한전, 정약용 여전). 중상은 '유우-홍의-박열-박북'(유수원 우서, 홍대용 의산문답, 박지원 열하일기, 박제가 북학의).

말장난 암기

'정약용은 여(輿)러분과 함께 여전론', '이익은 한(限)정판 토지만 보호', '박제가는 북학의로 박 터지게 소비하라'. 우물물은 '안 쓰면 마른다, 통장 잔고와 반대'.

감정 연결

유배지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지식인의 책임감, 백성이 굶는데 공리공담만 하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라는 분노가 실학의 심장이다.

장면 상상

강진 다산초당에서 책을 쌓아 올리는 정약용, 청나라 시장 거리에서 수레와 벽돌을 스케치하는 박지원 일행. 📚🖋️🛒

실수 방지 — 헷갈리면 여기서 틀린다

중농학파 vs 중상학파

중농은 토지 개혁(경세치용, 주로 경기 남인), 중상은 상공업·청 문물(이용후생, 주로 서울 노론). 해결 처방의 방향이 다르다.

균전론·한전론·여전론

균전론(유형원, 신분별 차등 분배)→한전론(이익, 영업전 매매 금지)→여전론(정약용, 공동 소유·경작). 인물과 짝을 바꿔 내는 최다 함정.

박제가 vs 박지원

박제가는 『북학의』·소비론(우물), 박지원은 『열하일기』·수레와 선박. 같은 북학파 '박씨'라 교차 출제된다.

관련 인물
유형원이익정약용유수원홍대용박지원박제가
관련 문화재·유물
목민심서경세유표반계수록성호사설열하일기북학의
성리학의 한계를 넘어 현실 개혁을 모색한 학문 운동으로, 북학파의 흐름은 개화사상의 원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