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 ~ 668년
고구려·백제·신라의 전성기가 4세기(백제)→5세기(고구려)→6세기(신라) 순서로 교차한다. 전성기 순서만 잡아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4세기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복하고 평양성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며 백제 전성기를 열었다. 칠지도가 그 증거다.
소수림왕은 불교 수용, 태학 설립, 율령 반포로 위기의 고구려를 재정비했다.
광개토대왕은 만주를 정복하고 400년 신라를 구원해 한반도 남부까지 영향력을 떨쳤다. 호우명 그릇이 그 증거다.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천도해 남진 정책을 펴고 475년 백제 한성을 함락시켰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충주 고구려비를 남겼다.
무령왕은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해 지방을 통제하고 중국 남조와 교류하며 백제를 다시 일으켰다. 무덤은 남조풍 벽돌무덤이다.
지증왕은 국호를 신라, 칭호를 왕으로 정하고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정복했으며 우경을 장려했다.
법흥왕은 율령 반포, 이차돈 순교를 계기로 한 불교 공인, 532년 금관가야 병합, 건원 연호로 신라 체제를 완성했다.
성왕은 538년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으며, 한강을 되찾았다가 신라에 빼앗기고 554년 관산성에서 전사했다.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했으며 순수비를 세우고 562년 대가야를 정복했다.
612년 을지문덕이 수 양제의 113만 대군을 살수에서 몰살시켰다. 여수장우중문시가 유명하다.
645년 당 태종의 대군을 안시성 군민이 88일 농성 끝에 물리쳤다. 연개소문의 천리장성과 함께 기억하라.
660년 나당 연합군이 침공하자 계백이 황산벌에서 결사 항전했으나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멸망했고, 곧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내분 속에 668년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가 멸망했고, 검모잠이 안승을 받들어 부흥 운동을 벌였다.
신라는 675년 매소성, 676년 기벌포에서 당군을 격파하고 문무왕 대에 삼국 통일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