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 1945년
무단통치→문화통치→민족말살통치로 바뀌는 식민 지배 방식과,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무장투쟁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역사.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헌병 경찰을 앞세워 태형과 즉결 처분으로 한국인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공포 통치.
일제가 기한부 신고제로 토지 소유권을 조사해 미신고지와 공유지를 빼앗고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긴 경제 수탈의 출발점.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과 전 민족적 만세 시위로 일제 통치 방식을 바꾸고 임시정부 수립을 이끌어낸 최대 독립운동.
3·1 운동을 계기로 1919년 상하이에 수립된 민주 공화제 정부로, 연통제·교통국·독립공채·구미위원부로 독립운동을 총괄했다.
1919년 김원봉이 조직하고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을 지침으로 삼아 김익상·김상옥·나석주 의거를 일으킨 항일 의열 투쟁 단체.
3·1 운동에 놀란 일제가 보통 경찰 전환 등 유화책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민족 분열책이었고,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을 수탈한 1920년대 통치.
1920년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봉오동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연합 부대가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독립 전쟁 최대의 승리.
1926년 순종 인산일의 6·10 만세 운동이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이어져 1927년 비타협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연합한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1929년 나주역 한일 학생 충돌에서 비롯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
1930년대 이후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세워 황국신민서사·창씨개명·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국가총동원법으로 인적·물적 자원까지 수탈한 통치.
1931년 김구가 침체된 임시정부를 살리기 위해 조직, 이봉창의 도쿄 의거와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로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1938년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에 이어 1940년 충칭에서 지청천 총사령의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어 대일 선전 포고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