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 1863년
이성계의 건국과 세종의 훈민정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영·정조의 탕평과 세도정치까지. 출제 비중이 가장 큰 시대.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한양으로 천도,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으로 나라의 설계도를 그렸다.
왕자의 난으로 집권한 태종이 6조 직계제·사병 혁파·호패법·신문고로 왕권을 강력하게 다졌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1443년 창제·1446년 반포하고, 집현전·4군 6진·측우기·칠정산·농사직설로 조선의 전성기를 열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1453)으로 권력을 잡아 6조 직계제를 부활시키고 집현전을 폐지, 직전법을 실시하며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다.
성종은 1485년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하고 홍문관을 설치했으며 김종직 등 사림을 등용해 훈구를 견제했다.
무오(조의제문)→갑자(폐비 윤씨)→기묘(조광조)→을사(외척 다툼) 순서로 사림이 화를 입었다.
조광조는 현량과·소격서 폐지·위훈 삭제 등 급진 개혁을 추진하다 1519년 기묘사화로 제거됐다.
1592년 왜군 침입,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학익진)·김시민의 진주·권율의 행주 대첩과 곽재우 등 의병이 나라를 지켰고 1597년 명량, 1598년 노량으로 끝났다.
광해군은 전후 복구와 대동법 경기 시행(1608), 명·후금 사이 중립 외교를 펼쳤으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1636년 청의 침입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 항전 끝에 삼전도에서 항복했고, 소현세자는 볼모로 끌려갔으며 효종 대 북벌론이 일어났다.
현종 대 기해·갑인 예송에서 서인과 남인이 상복 기간으로 대립했고, 숙종 대 경신·기사·갑술환국으로 붕당 정치가 일당 전제로 변질됐다.
영조는 탕평책으로 붕당을 누르고 탕평비를 세웠으며, 균역법(1750)으로 군포를 줄이고 『속대전』을 편찬했지만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잃었다.
정조는 규장각·초계문신제로 인재를 키우고 장용영으로 왕권을 뒷받침했으며, 수원 화성을 건설하고 신해통공(1791)으로 상업을 자유화했다.
중농학파는 유형원(균전론)·이익(한전론)·정약용(여전론)의 토지 개혁, 중상학파는 유수원·박지원·박제가(북학의)의 상공업 진흥과 청 문물 수용을 주장했다.
순조·헌종·철종 3대 60여 년간 안동 김씨 등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며 삼정의 문란과 매관매직이 만연했다.
1811년 홍경래는 평안도(서북) 차별에 맞서 봉기했고, 1862년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 백낙신의 탐학에서 시작되어 정부가 삼정이정청을 설치했다.